[천자춘추] 좁은 도로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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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넓으면 좋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차가 막힘없이 빠르게 이동하려면 도로가 넓어야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넓은 도로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도로가 넓어지면 우선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어려워진다. 넓은 도로를 가로질러 걷는 만큼 차와 충돌할 가능성이 커져 위험하다.

넓은 도로와 넓은 도로가 만나면 교차로도 커진다. 이런 교차로에서는 차량끼리 충돌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신호대기시간도 길어진다. 넓은 길이 빠른 것 같기도 하지만 교차로마다 신호등 때문에 정지하게 되면 그리 빠르지도 않다. 유일한 장점은 많은 교통량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뿐이다.

 

좁은 도로라고해서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다. 보행자에게 안전할 뿐만 아니라 차량 소통 측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선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하는데 부담이 적다.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하다. 교차로도 넓을 필요가 없다. 그만큼 신호주기가 짧아져 신호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다.

차량의 속도를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 신호등이 없어도 안전할 수 있다. 특히 주택가에서는 이웃과의 교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좁은 길에 접한 주택가에서는 이웃끼리 알고 지내는 정도가 상당히 높았으며 사람들이 머무는 곳도 집 앞, 보도, 도로 위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어린이들도 길에서 많이 노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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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길이 넓고 교통량이 많은 길에 접한 주택가에서는 알고 지내는 이웃의 수가 두 배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가 종종 이용하는 고덕동길이 최근 왕복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2차로로 운영될 때는 차량속도는 낮았지만 신호등이 없어 넓은 길보다 통행시간이 짧았다. 군데군데 과속방지턱이 설치되어 보행자들이 도로를 횡단하는데 크게 위험하지 않았다. 

좁은 도로의 매력이 느껴지는 도로였다. 하지만 최근 4차로로 운영되면서 신호등이 생겼다. 차량의 속도는 높아졌지만 신호대기시간이 늘어났다. 보행자 사고도 늘어날 것 같다. 차량 소통이나 보행자에게 모두 불편한 도로로 바뀌어 안타깝다.

 

모든 도로가 좁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좁은 도로가 가진 가치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좁지만 효과적인 도로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런 도로를 보전하고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주변에서 매력적인 좁은 길을 찾아보자.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연구그룹 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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