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통일이란 곧 고향에 돌아가서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상봉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분단기간이 길지 않은 상황이라면 통일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집합적 기억’을 회복하는 이른바 재통일이 의미를 강하게 갖는다.
그러나 분단 반세기가 지난 우리의 경우 통일이 단순히 재통일을 의미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통일의 궁극적 목표가 “민족구성원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통일을 분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워진다.
오히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재의 조건과 상황을 고려하여 다시 새로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이 경우 통일은 단순한 ‘재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이 되어야 한다. 즉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통일에는 세 종류의 통일이 있다. 일차적으로는 정치 및 제도의 통일이다. 즉 단일 권력체계 및 단일 정부를 세우고 남북한의 상이한 행정ㆍ경제ㆍ교육ㆍ국토ㆍ복지ㆍ노동ㆍ국방ㆍ농업 등 제반 제도 등을 통합하는 작업이다.
헌법과 법률은 물론 정부의 각종 공문서 양식, 초등학교 교과서, 교통표지판 및 외래어 표기법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와 규정을 통일시켜야 한다. 이 경우 북한제도를 남한 형태로 개편하는 작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남북 주민들 간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간 음주 관습의 차이로 통일 후 음주운전 단속을 위한 단일기준을 정하는데도 엄청난 애로를 겪었다. 제도의 통일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두 번째의 통일은 국토의 통일이다. 즉 분단으로 인해 그 동안 막혀있던 도로와 철로를 잇고 공항과 항만을 연결하며 통신과 산업단지를 연계해 주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북주민 모두가 한반도 내의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왕래하고 거주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단일생활권(혹은 단일경제권)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통인프라, 생산인프라 및 생활인프라의 연계에는 엄청난 규모의 재원과 긴 시간이 소요된다. 더욱이 북한은 험한 산악지대가 많은데다가 철도위주의 교통체계로 구축되어 있어 남한수준의 도로개설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정한 국토의 통일은 남북간 지역격차를 상당 수준 완화될 때 비로써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통일은 주민의식의 통일 즉 문화적 통일이다. 분단 전에는 남북이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언어, 같은 전통과 관습, 같은 정치.경제적 사고를 가지며 살아왔다. 즉 동질적 ‘문화공동체’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해 남북은 지난 60년간 매우 다른 가치관과 문화 그리고 교육을 받으면서 생활해왔다. 따라서 분단으로 인한 문화적 이질성을 극복해소하고 동질화를 이루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어쩌면 이러한 주민의식의 통일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완전히 동일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세대들이 통일 한국의 주류로 성장할 때까지 통일한국은 의식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남북간 갈등으로 여러 차례 사회적 몸살을 앓아야 할지도 모른다. 남북한 주민들이 사회심리적으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민’이라고 느낄 때 진정한 통일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남북통일의 완성은 남북한 주민들이 진정으로 상대에 대해 마음을 열어 이해의 폭을 넓힐때 비로소 가능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마침내 성공적 통일을 이룩한 독일에서 우리는 주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통일을 위하여 나름대로 주요한 원칙을 견지하였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잘사는 지역인 서독의 희생 없이는 낙후한 동독지역의 발전이 불가능하며, 동독의 발전 없이는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신념이었다.
통일 당시 서독의 집권당이었던 기민당의 원내총무 쇼블레이 박사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우리에게도 깊은 시사점을 준다. “분단의 극복은 잘사는 서독 지역이 분배와 양보의 의사를 가질 때만 가능하다.”
허재완 중앙대 사회과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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