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소통하고 응답하라

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가 열리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모임이다. 강산이 두 번 이상 바뀌어 기네스북에 오른 메아리다. 

일본 정부를 향한 피해 할머니들의 사과와 배상요구에 20여 년 이상이나 일본은 물론, 우리 정부도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일본을 향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의의 구슬픈 울부짖음이다.

 

침잠하던 정부는 지난 12월 갑작스레 한일 외교 장관이 만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합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일본이 위안부 보상으로 10억 엔을 출연하고, 사죄를 표명하긴 했으나 이는 법적 책임이 없어 고노담화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밀양’에서 남편을 잃은 피아노 선생 전도연은 자신의 아들마저 납치,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는다. 괴로움에 떨던 그녀는 종교에 몰입하며 생의 의미를 되찾는다. 절절한 기도 끝에 범인을 용서하려 마음먹고 교도소를 찾았지만 범인의 대답이 뜻밖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범인의 대답에 그녀는 분노한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

 

이번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문제가 있지만 필자는 절차적 정당성 미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들은 수요 집회에서,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 전에 정부로부터 어떠한 의견을 묻는 절차도 없었다고 밝혔다. 뒤늦게 외교부 차관이 할머니들을 찾았지만 이미 합의가 이뤄진 후였다. 할머니들이 합의가 졸속으로 처리되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일본군의 야만적인 행위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위안부 사안으로 한일 외교장관이 합의를 하기로 했다면, 우리 정부는 가장 먼저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 청취 절차도 거치지 않았으면서, 협상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할 바가 무엇이고 어떤 협상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결과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매듭지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국익을 위해 또 다른 모욕과 굴욕을 안긴 것은 아닐까? 눈앞에 보이는 작은 국익에 급급한 나머지 소통과 절차의 중요성을 망각한 것은 아닐까?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이번 기회에 배워야 한다.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대의를 저버리며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와 국민에게 먼저 다가가고 그에 응답할 줄 아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전대양 가톨릭관동대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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