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교통안전은 공공의 책무다

교통사고는 재수가 없으면 당하는 일로 생각하기 쉽다. 조심해서 운전했더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틀리지 않은 얘기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사고는 사람의 실수, 착오 등 인적요인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통사고의 책임을 사람의 탓으로만 돌리는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선 교통사고를 개인의 문제로만 다루는 인식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걸림돌이 된다. 안전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사람에 대한 교육, 홍보, 단속을 강화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논리가 만연하게 되기 쉽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법은 두 가지 문제를 갖는다. 첫째 사람은 아무리 교육을 잘 받고 단속을 강화해도 완벽해질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실수할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둘째 다른 측면의 안전노력을 경시하게 된다. 교통안전의 개선은 사람측면의 노력뿐만 아니라 더 안전한 차량과 도로 환경도 중요하다. 

더불어 교통법규나 보험 등 제도적 측면에서도 끊임없는 개선이 요구된다. 교통안전을 개인의 책임이나 운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한다면 차량, 도로환경, 제도 차원의 개선이 간과될 수 있다.

 

만약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실수로 손가락을 잘리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면 비용이 더 들지만 사람이 실수해도 손가락 절단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계를 개선하기 마련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리즌은 이렇듯 사고를 개인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책임으로 관점을 변경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며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은 안전체계적 접근법이라는 이름으로 교통안전분야에서도 퍼져나가고 있다. 스웨덴이 2000년 초반 비전제로라는 이름으로 의회의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네덜란드,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렇듯 교통안전을 개인의 탓이 아닌 시스템 차원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 교통안전은 공공의 책무가 된다. 사람, 차량, 도로환경 등으로 이루어지는 교통안전체계에서 이 모두를 법제도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책임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에 있기 때문이다. 새해엔 우리나라에서도 교통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지자체가 나오길 기대한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연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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