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스런 장면·공감 못하는 캐릭터… ‘그들만의 연극’
원작은 제1차 세계대전 중 가난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굶주린 한 가족과 메말라가는 마을 사람들이 늙은 배우의 예술혼을 통해 꿈을 잃어버린 시대의 아픔을 서로 위로하고 삶의 가치를 깨닫는 내용이다. 지난해 취임한 김철리 도립극단 예술감독이 ‘고전의 힘에 대중성을 결합시킨 웰메이드 연극’으로 선택, 직접 각색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원작의 묵직한 주제도, 빠져들어 즐길 만한 대중적 요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굶주림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원작 속 인물들은 사라진 채, ‘사회 부적응자’들만 남아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무명시인 아버지 ‘벤’이 대표적이다. 시 창작에만 몰두한 채 아홉 살 아들 ‘쟈니’에게 외상으로 빵과 치즈를 구해오라고 시키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졌다. 시 창작에 번뇌하고 작품을 읊는 장면에서의 몸짓과 대사는 ‘돈키호테’처럼 꿈을 쫓는 순수한 광인 혹은 순수하지만 치열한 예술가의 모습 없이 무미건조했다. 출판사에서 작품을 거절당하고 월세가 밀린 집에서 쫓겨나는 위기 상황에서도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졌을 뿐, 도통 감정이입이 되질 않았다.
작품의 주제를 전하는 중요한 캐릭터인 맥그리거는 꿈보다 물질을 따지는 인물로 다가왔다. 등장과 동시에 ‘배가 고프니 물한잔만 줄래’만을 반복하고, 어린 소년이 가져온 빵을 순식간에 혼자 먹어 치우고, 쟈니가 키우는 애완용 도마뱀을 잡아먹자고 말하는 장면 등 불필요한 캐릭터 설명 장면이 너무 긴 탓이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의 내면을 일깨우는 맥그리거의 나팔 연주는 ‘음이 틀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불안정해서 몰입할 수 없었다. 당연히 주민들이 그의 연주에 감읍하는 장면은 억지스러웠다. 마을 주민으로 등장한 조연마저도 제각각의 성량과 톤으로 대사를 내뱉고 사라져 마치 다른 작품속 장면 같았다.
도립극단은 관객 개발과 공연장 문턱 낮추기 등을 목표로 이번 공연을 전석 무료로 상연했지만, 형식적인 커튼콜 박수만 봐도 이날 관객이 다시 공연장을 찾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분명한 악수(惡手)였다. 공연 후 진행한 관객 만족도 결과를 유의미하게 분석해야 한다. 도립극단의 자성이 절박하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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