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춘래불사춘

김유성.jpg
완연한 봄이다. 교정에 노란 산수유 꽃이 돋기 시작하더니 이어 하얀 매화꽃이 솟아나고 어느 틈엔가 하얀 목련 꽃이 피었다. 며칠 새 벚꽃까지 활짝 피어올랐다. 훈훈한 봄기운으로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더욱이 올 봄엔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 출마자들의 확성기 소리로 열기가 뜨겁다. 이번 선거를 위해 각 당의 후보자 공천과정에서 시끄러운 소리도 많이 들렸다.

 

지난번 여·야의 유명 정치인이 자신의 심경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이 말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중국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궁녀 왕소군(王昭君)이다. 북방 흉노 땅에 끌려가 있는 왕소군의 심경을 헤아리며 당대(唐代) 시인 동방규(東方叫)가 쓴 시 ‘소군원(昭君怨)’에 ‘오랑캐 땅인들 화초가 없으랴만, 봄이 왔는데도 봄 같지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라고 하여 왕소군의 심경을 표현한 데서 유래하였다.

 

왕소군은 중국의 4대 미녀의 한 사람이다. 왕소군은 원제가 흉노 왕에게 내주어야 했던 절세미녀의 궁녀였다. 왕소군의 미모에 놀라 날아가던 기러기가 넋을 잃고 날개 짓을 멈추는 바람에 그만 땅에 떨어졌다고 하니, 그 미모가 어떠했을까 짐작이 간다.

 

왕소군은 당시 궁중화가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그녀의 초상화가 추하게 그려진 탓에 북방 흉노 왕에게 팔리게 되었다. 그녀와 이별하는 자리에서 뒤늦게 그녀의 미모에 놀란 원제가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천추.jpg
오늘날 왕소군과 같은 억울한 원(怨)과 한(恨)을 가진 사례는 없을까? 주변의 모함과 왜곡에 의해 잘못 그려져 뜻을 펴보지도 못한 인사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일은 권력 주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곁에는 측근 권력이 있고 여기에 줄을 대어 상대를 모함하고 잘못된 얼굴로 그려 권력자의 눈을 가려 진정한 모습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하지 않는가. 권력의 우산 아래 또 다른 작은 권력이 몰려드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인사권자는 인재를 잘 찾고 헤아릴 줄 하는 지혜의 눈으로 제2, 제3의 왕소군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릇이 안 되는 사람들이 걸맞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여 역량 있고 훌륭한 인재들이 빛을 못 본 채 묻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훌륭하고 능력 있는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사회 안정과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학연, 지연에 얽혀서 능력과 인품을 사장시키는 서투른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김유성 청덕고등학교 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