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겁을 집어먹고 잠시 동안 내려야 하나 마나 머뭇거리게 된다. ‘내릴까’ 하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스르르 문이 닫히고 제대로 운행을 한다. 얼마 지나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책 꾸러미를 바닥에 놓은 상태였다. 엘리베이터가 또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지 않았다. 내려야하나 하고 책 꾸러미를 미는 순간 문이 닫히고 작동을 했다.
‘아!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오래되고 낡아 한쪽으로 쏠리면 문이 닫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아무도 없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코너에 기대어 서봤다. 역시 ‘삐’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 문이 닫히며 정상운행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는 법이다. 빈 공간에서 나의 위치가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게도 하고 멈추게도 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몇 년 전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는 멤버들의 자리배치를 게임성적에 따라 재배치하는 내용으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성적에 따라 자리를 재배치 받은 멤버들은 다음 녹화를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가장 끝자리에 서게 된 메인 MC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낯선 상황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멤버들을 위해 확성기를 준비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불편함을 충분히 처리하는 센스를 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누명을 덧씌우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무리들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선거철에는 소위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그 무리들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을 진 모르지만, 음해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인격적인 살인을 경험하는 것과 진배없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모씨가 모처에서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전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증거를 확보해 주는 분. 항의하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연락해 주는 분, 사태 수습에 동참해 주는 분, 당신의 일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어 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분들이 생긴다.
“당신이 결백함을 내가 다 안다”라고 말해 주는 분들이 여기저기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신념이 옳았음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고 올곧은 친구들 과 진실한 사람들을 얻는다. 정의로운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과 말 한 마디가 자신이 쌓아왔던 인간관계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재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선심성 공약이 남발하고 입에 담지 못할 막말들이 난무하는 선거판을 보면서 낡은 엘리베이터에서의 무게중심,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출중한 능력을 보인 메인MC, 누명과 음해의 시간과의 싸움을 생각게 한다.
나는 어디에 서서 균형을 잡을 것인지, 자리 탓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능력을 키울 것인지, 권력자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면서 남을 못살게 굴지는 않았는지, 현재 나의 위치는 어디이고 어떨까를 곰곰이 집어볼 때이다.
전대양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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