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보다 늦었지만 ‘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과거의 달콤한 향수에서 벗어나 또 다른 치즈를 찾아 미로 속으로의 모험을 떠났다. 하지만 ‘헴’은 과거의 기억에 사로 잡혀 그 자리에서 현실을 부정하고 불평만 하고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의 이야기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것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변화’가 일상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몸가짐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체질적으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고에 익숙하지 못하다. 대개의 경우 낯익은 습관 때문에 변화에 둔감하고, 애써 외면하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10년 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때 우리는 어떤 미로를 달리고 있을까? 아무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썩은 치즈 때문에 절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스니프’와 ‘스커리’처럼 재빠르게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설 것인가? ‘허’처럼 조금 늦었지만 더 일찍 떠났으면 하는 후회를 하며 미로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헴’처럼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라는 생각에 빠져 그 자리에 앉아 마냥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변화의 시기를 살면서 변화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과거 썩은 치즈의 망령에 시달리게 된다. 과감히 과거의 치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치즈를 향해 나서야 한다. 과거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흘러간 물과 같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앞에 남겨진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이다. 소망하는 미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벽을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인생은 탄탄대로가 아니고 미로와도 같다.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때론 막다른 길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미로 앞에서 굳은 신념을 갖고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면 새로운 길은 열리고 말 것이다.
변화의 시대에 신속히 대처하고 그 변화를 즐기자. 변화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새 시대를 열어가자.
최악의 국회였다는 19대 국회가 막을 내리고 바야흐로 20대 국회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여소야대 국회라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기에 희망과 기대를 가져본다.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
‘변화’는 ‘기회’이다. ‘변화’는 ‘도전’이다. ‘변화’는 ‘창조’이다.
김유성 청덕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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