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술대회 발표자들이 30~40대로 젊어진 것과 함께, 유족들과의 만남이 세대를 이어가며 이루어짐으로 그 의미가 한층 더했다. 나혜석에 관한 재조명이 이제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기존 나혜석에 대한 연구는 이구열의 발굴(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 1974)과 윤범모(나혜석학회 회장)의 성과도 크지만, 사실 미술보다는 문학계에서 특히 1980년대부터 여성문학연구자들을 통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번 전시회에서 당시 1918년에 발행된 원본이 처음 공개된,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의식을 지닌 소설 ‘경희’를 비롯해, 나혜석의 글들은 여성주의자들과 문학계의 주목을 끌지 않을 수가 없다. 나혜석의 그림보다 글이 지닌 화제성과 시대성이 눈에 띌 법은 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불우하게 세상을 떠난 작가의 자화상을 다시 살펴 볼 이유는 명확하다. 당대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캔들로 인하여 가리어진’ 나혜석의 예술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전에 나온 나혜석의 자화상은,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 순간이, 한반도에서 여성의 위상을 바꾼 대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나혜석 본인은 물론 당대의 지식인들조차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나혜석 자화상이 지닌 역사성이라는 의미의 획득을 곰브리히의 말이 대변해준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해석에는 새로운 관점이 점차 덧붙여지면서 역사의 깊이를 더하게 마련이다. 문화지체와 역사지체 현상이 두드러지는 한국에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재해석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다.
나혜석 연구는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풍부해 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짐작하기에 먼 일이지만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면, 나혜석의 자화상이 국보나 보물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전승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전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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