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늦을땐 항의 빗발 비·눈 내리면 위험천만 운전길
온 몸 땀에 젖고 쉴 틈 없지만 고객 기뻐하는 모습보며 보람
약 14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배달음식 시장은 백화점, 편의점, 대형마트를 비롯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배달 서비스에 적극 나서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급증한 배달시장 성장세만큼, 배달 기사들의 여건 역시 성장했을까.
빠른 배송의 편리함 뒤에는 음식 배달ㆍ택배ㆍ배달대행 등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는 기사들의 애환이 숨어 있다. 배달 시장이 급성장한 탓에 ‘더 빨리’, ‘더 많이’를 강요받는 업계 종사자들의 고된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 피자 배달 기사들의 하루…‘배달=스피드’ 인식 탓에 교통사고 위험 노출
5일 저녁 7시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의 한 피자 가게는 물밀듯이 들어오는 주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저녁식사 시간대인데다가 비까지 내리면서 배달 주문량이 평소보다 50% 이상 급증한 탓이다. 방지환 사장(32)은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시간대 구분없이 온종일 정신이 없다”며 주문 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번잡한 속에서 평범한 상의와 달리 하의는 몸에 달라붙는 재질의 반바지를 입은 배달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눈길이 갔다. 매장 직원 양동규씨(20)는 “비 오는 날에는 옷이 쉽게 젖어 안에는 수영복, 바깥에는 반바지를 입는다”면서 “배달을 나갔다가 오면 겉옷, 속옷 할 것 없이 다 젖어버리기 때문에 이게 편하다”고 설명했다.
양씨는 말을 하면서도 방금 나온 피자를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막 배달을 마치고 왔지만 밀린 배달을 처리하려면 쉴 틈이 없다. ‘배달=스피드’로 인식된 탓에 조금이라도 배송이 늦으면 손님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비옷도 입지 못한 채 오토바이를 타느라 홀딱 젖은 몸을 말릴 새도 없었다. 바삐 나가는 직원들과 방 사장은 서로를 향해 “안전운전 하라”며 신신당부했다. 대부분 배달이 오토바이로 이뤄지다 보니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어 서로 간에 안전운전을 수시로 강조해야 한다.
배달을 직접 하는 방 사장도 지난 2014년 6월께 직접 배달을 하다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차량에 부딪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방사장은 “주방 직원보다 배달 직원의 급여가 더 높은 이유가 위험수당이 포함돼 있기 때문일 정도로 안전에 취약하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다시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급이 높고,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더위나 비를 뚫고 배달을 가면, 수고가 많다는 손님의 말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직원 원용수씨(28)는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조금 더 조심히 타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배달에 나선다”면서 “배달 기사들이 안전 운전을 할 수 있도록 손님들께서도 조금 늦더라도 여유 있게 기다려주시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택배 배송 문제 생길라…육체적인 노동보다 불만사항이 더 두려워
“택배를 받고 기뻐하는 고객들을 보면, 하루 16시간의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도 말끔히 녹아내립니다.”
6일 오전 10시 안산시 단원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배달할 물건을 정리하던 택배 기사 정부영씨(59)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정씨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과 선부동 일대에서 6년째 도서ㆍ화장품 등 소형 물품을 배송하고 있다. 대형 택배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지만, 회사소속이 아닌 지입차주, 즉 특수고용 노동자로 불리는 배달 사장이다.
지난 2011년부터 배달업을 시작한 정씨는 6년째 새벽 4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사무실에 도착해 그날 배송할 물품을 분류하다 보면, 아침 식사도 우유 한 잔으로 때우기 일쑤다. 오전 9시부터 본격적으로 물품 배송을 시작하면 밤 8시가 돼서야 끝난다.
소포를 들고 바삐 움직이면서도 정씨의 시선은 계속 휴대전화를 향했다. 하루에 200건이 넘는 물품을 배송해야 해 시간을 수시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과 옷 등 배송 물품을 급히 챙기고 다시 나선 정씨가 아파트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층수가 20층을 가리키자, 예순을 바라보는 정씨는 4층을 계단으로 단숨에 오르내렸다.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씨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힘든 것은 육체적인 노동이 아니라고 한다. 택배 기사들은 주행 중 사고가 나는 게 가장 두렵다. 최근엔 최근 빗길에 미끄러져 차량이 파손됐지만, 배송부터 걱정됐다.
대형택배 회사에서 계약을 맺어 배송 한 건에 700원의 수수료만 받지만, 배송에 문제가 생겨 불만사항이 접수되면 건당 5만원을 업체에 내야 한다. 정씨도 파손된 차량을 정비업체에 맡기고 다른 차량을 구해 남은 물건을 전부 배송하고 나서야 병원으로 향했다. 택배 기사 사이에서는 “아픈 것도 배송물에 허락 맡고 아파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 같은 장마철은 택배기사들에게 더욱 고역이다. 우비를 쓰고 벗을 여유가 없어 일정 물품 배송이 끝나면 차라리 젖은 옷을 갈아입고 다음 배송지로 간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택배 업무를 쉬는 날 하는 등산만이 정씨에게는 유일한 휴식의 시간이다.
하지만, 정씨의 택배 일은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정씨는 “고객이 물건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일의 보람을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물건을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겠다”고 말했다.
유병돈 여승구 기자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에 하루 피로가 사르르…
■ ‘반말’, ‘잠수’ 말고, ‘따뜻한 인사’ 좋아요…배달 및 택배 종사자들의 작은 바람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버는 A씨는 최근 피자 배달을 갔다가 다짜고짜 고객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배달이 밀린 탓에 평소보다 10분가량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고객은 문을 열어주지도 않은 채 “이따위로 장사할 거면 접어라.
약속시간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어떻게 벌어 먹고살려고 하냐”며 A씨를 몰아붙였다. 주문을 받을 때 배달이 밀려 늦을 것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했던 A씨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A씨는 고객에게 거듭 사과를 한 끝에 피자를 전달하고 피자 값을 지불받았지만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7일 배달의 민족에 따르면 최근 배달 종사자 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배달 및 운수업 종사자들이 업무 중 가장 힘든 순간으로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할 때를 꼽았다.
설문 참여자의 34%가 반말이나 막말로 무시하거나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고객을 만났을 때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도착한 집에 고객이 부재중일 때도 순위권에 있었다. 반면 설문 참여자의 80%는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고객이 따뜻한 미소와 인사말로 반겨줄 때’를 선택했다.
배달 및 택배 배송 종사자들의 의견도 일맥상통했다. 이들은 고객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로 다짜고짜 반말을 하거나 폭언은 자제할 것, 부재 시에는 미리 연락 줄 것, 따뜻한 말 한 마디만 건네 줄 것 등을 꼽았다.
특히 대부분 종사자는 많은 업무로 지쳐 있을 때 고객이 건네는 ‘수고하십니다’라는 한 마디에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취재진에 건넨 “서로 기본적인 예절만 지켜준다면 웃으면서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말은 이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유병돈ㆍ여승구 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