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거울, 골목길] 골 목에 숨어있는 근대건축

무심코 지나친 낡은 건물… 알고보니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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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옛 부국원
“그냥 오래된 건물 아니에요?” 사람들은 보통 낡은 건물이 헐리길 바란다. 대신 그 자리에 깨끗하고 좋은 새 건물이 들어서길 원한다. 

그래서인지 낡은 건물에 관심을 주는 것에 인색하다. 우리가 평소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에 근대사를 담고 있는 건물이 있다면 믿어질까. 낡은 건물이 세월과 역사의 풍파를 견뎌낸 흔적이라면, 눈 앞의 역사교과서를 꼼꼼히 읽어야 하는 건 바로 우리의 몫이다.

 

수원시 교동 팔달보건소 뒤쪽 골목인 향교로는 오늘날 사람도 차도 자전거도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 이 골목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당시 종묘회사였던 옛 부국원 건물이다. 옛 부국원은 1916년 일제가 농작물 종자와 농기구를 판매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로, 해방 이후 건물은 그대로 둔 채 자리를 옮겼다. 

1952~1956년 4년 간 수원지방법원과 수원지방검찰청의 임시청사로 쓰였다. 그 이후 수원시 교육지원청과 공화당 경기도당사로도 사용됐다. 또 내과가 건물에 들어오기도 하고 출판사로 쓰이기도 했다. 옛 부국원 건물은 긴 역사만큼이나 주인도 많이 바뀐 곳이다. 더욱이 이 건물은 지난해 철거될 뻔한 위기도 있었으나 수원시에서 해당 건물을 사들이면서 철거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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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농협 창전지점
당시 건물주 A씨가 건물을 팔았고, 새로운 건물주 B씨가 이를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 했던 것이다. 옛 부국원 건물은 근대사를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지난 2006년 시가 향토문화유적 제19호로 지정했고, 경기도는 현재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이다.

 

옛 부국원 건물은 10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교동 주민들의 삶과 함께했다. 다시 찾은 옛 부국원 건물은 ‘한솔문화사’ 간판이 걸려있고 건물의 문은 잠긴 상태였다. 건물은 정사각형 모양의 회색과 검정색 블록으로 꾸며진 골목길과 꽤 어울리는 듯 했다. 

그러나 왼쪽으로 늘어서 있는 신축빌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엔 무언가 어색해 보였다. 또 익숙한 만큼 소홀해진 탓일까. 옛 부국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물에 대해 물어보니 ‘오래된 건물’이나 ‘옛 수원지법과 수원지청 건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천에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한 건물이 있다. 붉은색 벽돌에 주황색 기와를 얹은 1층짜리 건물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금융기관으로 사용됐다. 1964년 이천농협에서 인수해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흰색 지붕 모양이 얹어진 검정색 송덕비가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번화가인 이천중앙로문화의거리 어재연로37번길에 있다. 주변에는 옷가게와 화장품가게 등이 즐비해 있다. 화려한 가게들 사이에 투박한 빨간색 벽돌건물은 지나치기 쉽지만 건물의 보존 상태는 매우 훌륭한 편이라 또 하나의 역사 교과서가 골목에 놓여있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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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옛 대부면사무소
안산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특이한 건물도 있다. 대부중앙로를 따라 대부동주민센터 쪽 골목길로 들어오면 주민센터 바로 앞에 한옥식 1층 건물이 있다. 대부동주민센터를 찾는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하다. 바로 옛 대부면사무소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보통 공공시설은 주로 벽돌구조나 일본식 나무구조로 건물을 올렸다. 

이와 달리 옛 대부면사무소 건물은 전통건축양식에 근대적 행정 기능을 수용한 곳이다. 이는 과도기적 행정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은 총 면적 93㎡인 건물 하나만이 단촐하게 있지만 처음 지었을 땐 사무실과 회의실, 숙직실 등을 갖춘 총 면적 140㎡짜리 건물이었다. 옛 대부면사무소 2004년 경기도 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됐다.

유선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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