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그 골목이… 그린다, 옛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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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기억 속 그 시절 골목길은 어린이들의 놀이터이자 만남의 광장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골목은 벽화로 새 옷을 갈아입고, 다른 역할의 거리로서 새로운 문화공간이 됐다. 주택 밀집지역인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의 한 골목길에서 어린이들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 오승현기자
“그 시절이 그리운 건, 그 골목이 그리운 건, 단지 지금보다 젊은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곳에 아빠의 청춘이, 엄마의 청춘이, 친구들의 청춘이, 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추억과 감성으로 세대를 초월해 TV 앞으로 끌어모은 ‘응답하라1988’의 마지막회 여주인공 덕선이의 말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골목에서의 생활은 흔하디 흔했다. 지금처럼 놀이기반이 탄탄하지 않았던 당시에 골목길은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흰색 돌맹이나 분필로 삐뚤빼뚤 선을 그어 땅따먹기를 했고 땅을 파서 구슬치기를, 전봇대와 한쪽 발목에 검정색 고무줄을 이어묶고 고무줄놀이를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또 골목은 만남의 장소였다. 덕선이는 쌍문동 친구들과 전화를 끊기 전에 “그럼 골목에서 봐”라는 말을 종종했다. 

쌍문동 태티서로 불렸던 엄마들도 골목에 놓인 평상에 앉아 남편 뒷담화부터 자식 이야기까지 나눴다. 이곳에 앉아 지나가는 택이 아빠나 학생주임 선생님을 불러 안부를 물으며 또 다시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쌍문동 봉황당 골목은 응팔 인물들 삶, 그 자체였다.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응팔앓이를 했던 건 흥미진진한 남편찾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희미해진 가치를 다시금 불러일으켜서다. 가족의 소중함뿐만이 아니다. 잊고 있었던, 골목에서 나눴던 이웃 간의 정,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있었다.

골목길 이웃들의 따뜻한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팍팍한 도시생활이 일반화된 우리들 삶에 그들의 골목길은 하나의 소통창구로 다가왔다. 응팔을 통해 중장년층은 어린시절 골목에 대한 향수를 느꼈고, 젊은층은 골목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오늘날 골목길의 모습은 어떨까. 1980년대와 달리 2016년을 살고 있는 골목길은 어떤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있는 걸까. 골목길은 우리네 삶의 천태만상을 보여준다. 

골목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비추고 있어서다. 21세기에 ‘골목’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골목’은 여전히 담담하게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어느 오래된 골목은 새옷을 갈아입고 분위기를 바꿨다. 회색빛 담장에 알록달록한 벽화를 칠해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벽화골목은 사람이 ‘떠나가는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또 골목에는 잊고 있던 근대사가 숨어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던 건축물은 간판만 바뀐 채 같은 모습으로 골목길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래된 건물로만 알고 있어 주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묵묵히 역사를 품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골목길과는 또다른 새로운 골목길도 생겨났다. 도내 곳곳에는 외국인 집단촌이 형성됐다. 지난해 경기도에 등록된 외국인 수는 36만명을 넘어섰다. 이들도 오늘날 골목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자신들만의 색깔로 골목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끝으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여행자들은 누구나 찾는 유명 관광지 보다는 옆에 있는 작은 골목길을 찾는 경우가 많다. 찾아간 동네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골목길이라는 걸 아는 것이다. 골목길의 참멋을 찾아나서 보자. 

정민훈ㆍ유선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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