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상생결제시스템의 성공조건

어음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된다.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기록에 의하면 약속어음(promissory note)은 당나라 때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차를 거래하는 상인들이 부피와 무게가 나가는 동전을 대신하여 결제수단으로 가벼운 약속어음을 사용했고 이것이 바로 비전(飛錢)이다. 돈이기는 한데 날아 갈 듯 가볍다고 해서 ‘날으는 동전’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것도 재미있다.

 

중국의 어음제도가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마르코 폴로의 혜안 덕분이다. 무거운 동전꾸러미 대신 어음 한 장으로 거래하는 중국인의 지혜에 유럽인들은 놀랐다. 어음은 1325년 밀라노에서 시작되어 제노바, 바르셀로나 등 상업도시에서 널리 통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제네바협약은 어음에 대한 규정과 교환방식 등 국제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편리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어음 사용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 24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표들은 불합리한 어음제도를 폐지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어음거래를 하는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최근 ‘어음제도 폐지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은 어음제도 폐지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음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결제기일 장기화로 인한 자금운영 애로’(78.1%), ‘어음부도로 인한 자금 미회수’(58.1%), ‘할인수수료 비용과다’(26.0%)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최근 1년간 수취한 어음 중 가장 길었던 어음의 결제기일 평균은 107.9일로 조사됐다.

 

반면 금융당국은 일부 부작용은 이해하지만 완전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기업 간 거래 위축과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어음 지급 기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하여 오는 2021년 전자어음 최장 만기일을 1년에서 3개월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산업부와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서는 결제기간의 장기화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이른 바 ‘거래혁신’이라 할 수 있는 상생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제도는 대기업이 협력사에게 납품대가로 상생결제채권을 지급하고 2차 이하 협력사는 이 채권을 결제일 이전에 거래은행을 통해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스마트 금융이라고 하겠다.

 

상생결제제도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금융비용을 크게 경감시켜 준다. 까다로운 심사나 추가적인 담보가 필요 없고 대기업의 금리로 할인을 받으므로 협력사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둘째, 약정을 체결하면 바로 활용할 수 있다. 시중은행의 온라인 결제상품이기 때문에 즉시 활용이 가능하다. 셋째, 부도위험이 없어 안전하다. 상생결제채권을 사용하면 상위 협력기업이 부도가 나더라도 연대보증책임이 없으므로 연쇄부도를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1차 협력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이를 촉진하기 위하여 작년 말 조세특례법을 개정하여 중소기업이 상생결제채권으로 결제한 금액에 대해 최대 0.2%를 법인세에서 공제해 주기로 했다.

 

7월 말 기준 상생결제시스템을 도입한 대기업과 공공기관 수는 247개이고 누적 이용금액은 61조원에 이른다. 짧은 기간에 나타난 의미있는 실적이다. 민간부문과 공공기관 그리고 정부가 함께 본 제도의 확산에 박차를 가하면 이용금액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중국인들이 애용했던 어음은 디지털시대를 맞아 사용이 감소하고 있다. 효율성과 안전성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상생결제시스템을 공공부문까지 확산하고,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중견기업과 1차 협력사의 참여확산을 위해 조세특례법상 세금공제대상에 중견기업을 포함시키도록 할 계획이다.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이 제도에 많은 기업들의 동참을 기대해 본다.

 

이정화 대중소기업협력재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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