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페인트 뒤덮인 ‘행궁동 벽화골목’

수원시, 보존 가치 높아 문화시설 추진
“재산권 침해” 반대 주민들이 벽화 훼손
시민단체도 “동의 없이 일방 진행”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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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시 행궁동 벽화마을의 벽화들이 5일 붉은색 페인트로 훼손된 채 흉물로 변해있다. 수원시가 이곳을 문화시설로 지정하려하자 재산권 피해를 우려한 집주인들이 반발, 스스로 자신의 집에 그려진 벽화를 훼손했다. 김시범기자
물고기와 어린아이 등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그려져 수원의 대표 관광지로 주목받는 ‘행궁동 벽화골목’이 시뻘건 페인트로 훼손, 흉측한 모습으로 전락했다.

 

5일 수원시와 행궁동 주민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30일 팔달구 행궁동 일원 12필지(약 1천600여㎡)를 도시계획시설 ‘문화시설’로 지정하는 안을 공고, 오는 15일까지 주민 의견을 받고 있다.

 

시의 문화시설 지정 추진은 행궁동 벽화골목 안에는 수십년된 한옥과 수원시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골목길이 조성되는 등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또 지난 2010년 한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담벼락에 그린 벽화로 벽화골목이 조성,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것도 이유다.

 

그러나 문화시설로 지정될 경우 해당 구역의 개발이 제한될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 행위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이날 오전 9시께 행궁동 주민센터를 찾아가 문화시설 지정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했고, 이 중 일부는 자신의 집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를 빨간색 페인트로 모조리 지워버렸다. 

벽화골목 주민 A씨(69)는 “시가 우리 의견은 듣지도 않고 마음대로 문화시설로 지정하겠다고 하니 화가 나 벽화를 지워버렸다”면서 “안 그래도 관광객들이 오면서 소음피해 등이 있는데 문화시설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주민들의 사유재산권만 침해할 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 B씨(60·여) 역시 “문화시설로 지정되면 앞으로 마음대로 개발도 못 하는데 집값은 어떡하느냐”고 토로했다. 이 같은 주민들의 행동으로 인해 관광객들의 큰 인기를 끌어 수원시의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은 물고기 벽화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벽화를 그린 시민단체도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시설 지정을 반대하고 있다. 해당 시민단체 대표는 “시가 문화시설 지정에 대해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주민들과 함께 그린 벽화가 이렇게 사라져 안타깝다. 빨리 협상이 이뤄져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시는 행궁동 벽화골목이 역사·문화적 가치가 상당해 문화시설로의 지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벽화 외에도 행궁동 벽화골목은 보존할만하다고 판단돼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조성하는 등 향후 활용방안을 고려 중”이라며 “그러나 이달 중에 도시계획위원회 절차를 밟아야 하는 등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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