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모든 슬픔을 웃는 마스크로 덮다

80년대 초, 필리핀 남부, 네그로스섬의 주도-바콜로드 지역민의 유일한 생업이었던 사탕수수가격이 폭락하고, 1천여 명의 지역사람들을 태운 돈 쥬앙 여객선의 침몰로 7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면서 바콜로드는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도시였다. 

경제적 위기와 가족을 잃은 슬픔이 함께 덮쳐 유래 없는 공황상태에서 어려움을 이겨낼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지역 예술가들은 고민 끝에 웃는 얼굴을 한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는 ‘마스카라페스티벌’(Masskara Festival)을 만들었다.

 

모든 아픔과 슬픔을 웃는 얼굴로 덮고 앞으로 올 희망을 축하하자는 의미였다. 끼와 흥이 많고 긍정적인 필리핀 사람들의 민족성이 드러나는 기획이었다. 지역민들의 참여를 위주로 한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루었다. 예술가들은 마을 단위와 학교 단위로 그룹을 만들어 ‘마스크와 의상’을 제작하였고, 춤 경연을 펼쳤다.

이렇게 마을단위로, 지역단위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적 성격의 축제는 아픔을 같이 겪은 바콜로드 지역 사람들의 호응 속에 점차 강한 축제성을 띄며 화합의 장으로 역할했고, 필리핀을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로 성장했다.

특히 이 축제가 가진 힘 중의 하나는, 지방정부와 교육부의 지원, 그리고 지역기업의 후원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점이다. 바콜로드 지역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마스카라댄스를 경험하며 그 학생들이 중등부에 가면 중등부 경연을 펼치고, 성인이 되면 마을단위로 그 맥이 이어진다. 축제가 하나의 관습이 되고 문화가 되어 교육적인 자생력을 갖게 된 것이다.

 

바콜로드를 대표하는 ‘마스카라 축제’ 기간에는 도시 곳곳에 화려한 마스크들이 등장했다. 마치 바콜로드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대중이 모이는 공공기관, 쇼핑센터, 식당, 호텔마다 인테리어처럼 마스크들이 매달려 있고, 축제티셔츠를 입고 마스크를 쓰고 서빙하는 점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축제 퍼레이드와 광장거리, 특설무대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넘쳐나고 밤늦도록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지금의 마스카라축제는 여느 축제와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기도 하고, 마스크와 의상, 소품 등은 훨씬 화려하고 디자인도 다양하지만, 37년의 축제역사동안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마스크는 ‘웃고 있다’ 는 것이다. 그것으로 이 축제의 취지와 의의를 잊지 않고 있다.

 

숲의 도시, 안산은 내년 봄, 4월을 남다르게 만나는 준비를 차분히 하고자 한다. 세월호의 아픔을 딛고, 이제는 치유를 넘어 희망을 그리는 조붓한 마을축제를, 거리극축제의 명소가 된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가족애에 기반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강창일 (재)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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