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브렉시트 투표 후, 아직 건재한 영국

지난 6월 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영국에 쏠렸다.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거의 모든 언론과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고 탈퇴로 귀결되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한 해외의 지도자들까지 나서 영국인들에게 EU 잔류를 설득했음에도 영국인들은 결국 탈퇴를 선택했다.

 

투표 후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향후 영국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섣불리 예측하기에는 아직 조심스럽다. 다만 분명한 것은 새 내각의 수장인 테레사 메이 총리가 직면한 대내외 과제는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비록 부결되었지만 이미 지난 2014년 독립투표를 한 차례 시행했던 스코틀랜드는 이 기회를 틈타 다시 한 번 독립을 추진하게다고 벼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허언(虛言)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영국 경제는 아직 건실하다. 얼마 전 발표된 영국의 지난 3분기 경제 성장률은 브렉시트의 충격에도 성장세를 나타냈다.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졌음에도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 영국 경제를 지탱하는 서비스업도 호조이다.

EU 탈퇴 협상이 본격적으로 착수되면 영국 경제의 전망은 다시 한 번 안개 속으로 접어들 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례를 통해 보건대 생각만큼 그 충격이 미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불허전이라고 불릴 만큼 이 나라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

 

필자는 이러한 영국의 힘이 국가의 위기일수록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정치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역대 영국의 지도자들은 위기 때마다 강력한 리더십를 발휘했고, 국민들은 이념과 계급에 관계없이 정부에 강한 신뢰를 나타냈다. 큰 진통이 없지는 않겠지만 영국은 이 난국을 어떻게든 돌파할 것 같다. 영국의 지난 역사는 그런 믿음을 준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어떠한가? 비선실세의 국정농락 문제가 안 그래도 갈 길 바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안보, 경제, 사회 및 교육 등 문제는 산적해 있는데도 말이다. 대통령의 권위는 실추됐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그러나 권력을 위한 기회가 아니다. 정치와 국민 사이의 신뢰를 되살릴 기회다. 피땀 흘려 이룩한 대한민국의 기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회이길 바란다.

 

조의행 신한대학교 초빙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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