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임금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었다. 그런데 그 옷은 보이지 않는다. 사기꾼에게 속았다. “바보한텐 보이지 않습니다!” 왕은 잘 보인다고 한다. 속은 것일까? 사실 속고 싶었다. 그 허구의 화려함과 권력의 맛이 너무 감미롭고 달콤하다. 벌거벗은 임금을 본 신하들과 시민들도 한 결같이 경탄한다. “과연 대단하군!” “역시 임금님 취향은 남달라!” 모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만 본다.
다행히 군중을 뚫고 진리의 소리가 들려온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모두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던 진실이, 어린이처럼 보이는 진정한 어른, 어린 왕자로부터 들려온다. 그 순간 어른인 줄 착각하고 있던 모든 어린이들의 벌거벗음이 드러난다. 임금이 벌거벗은 이유는 옷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옷을 입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입고 있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신하들이 벌거벗은 이유는 반대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기만과 가식, 왕에게 아부해 한자리 얻으려는, 아니면 이 기회에 왕을 정신병자로 만들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보려는 권력욕의 교활한 옷을 덕지덕지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벌거벗은 이유는 들리는 소리만 듣고, 보라고 하는 것만 보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가 마비되고, 그저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탈정치화, 자연화된 강아지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두 복받은 사람들이다. 적어도 들어야 할 것을 들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았다. 벌거벗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것은 부끄러움도 수치도 아니다. 원래 그랬기 때문이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정말 벌거벗음을 인정한다면, 옷을 입으면 된다. 벌거벗은 자만이 옷을 입을 수 있다. 아직 입고 있다고 우긴다면,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음으로 남게 된다.
김봉규 미래행복인재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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