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쪽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통령 선거가 예상되는 만큼 대선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는 미온적인 입장으로 크게 나눠진 가운데 여·야간, 야·야간 이견으로 새해 들어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된다.
■ 정세균 국회의장과 박 대통령
20대 국회 들어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인 사람은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정 의장은 취임 초인 지난해 6월 “지난 30여 년간 헌법을 운용한 결과, 새로운 헌법 질서를 통해 국가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정 의장은 개헌시기에 대해서는 자신의 국회의장 임기가 끝나는 ‘2018년 5월’ 혹은 ‘20대 국회 중’을 제시,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정 의장이 20대 국회 개헌 논의의 시발(始發)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4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 달라”고 깜짝 제안하며 “임기 내 개헌 완수”를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제왕적 대통령제와 ‘최순실 게이트’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개헌논의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는 쪽과 시간이 촉박함을 이유로 조기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쪽으로 나눠지면서 개헌 문제는 정치권 논란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상태다.
■ 개헌에 적극적인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3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12일 위원장을 개헌특위 신설에 합의했으며 29일 본회의에서 개혁보수신당을 포함해 4개 교섭단체 36명을 위원으로 하는 ‘개헌특위 구성안’을 처리해 새해 들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앞서 구성된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에는 여야 의원 200여 명이 소속돼 이미 의결정족수를 넘어선 상태다. 하지만 개헌에 대한 여야 간, 야야 간 미묘한 입장차로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개헌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은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유승민 의원 등 일부 의원 제외)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12월9일 40여 명 의원이 참여한 ‘국가 변혁을 위한 개헌추진회의’(대표 이주영)를 출범시키며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이들의 주장은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제를 개혁하는 방법은 개헌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개혁보수신당’ 김무성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가 엉망진창이 된 것은 잘못된 제왕적 권력구조 때문”이라면서 “현 제도하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최순실 사태’가 또다시 생길 수밖에 없다”며 개헌을 강조했다.
새누리당 정우택 신임 원내대표도 지난해 12월16일 당선 일성에서 “개헌 정국을 이끌어 좌파 정권, 진보 좌파가 들어와서 집권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한 남경필 경기지사의 경우, 지난해 여름 ‘협치형 대통령제와 수도이전 개헌’을 주장했으나, 박 대통령 탄핵 이후인 지난 12월 중순에는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대선 전에 개헌하면 청산 대상들이 개헌에 끼어든다”면서 “대선 이후에 해야 한다”며 시기적으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 개헌 입장 엇갈린 ‘야당’
민주당은 개헌특위 구성으로 1월부터 본격 논의의 장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지만 사정은 다소 복잡하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논의의 장은 만들어 드린다”면서 “어차피 조기 대선이 불가피해졌는데 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같이 추진할 수 있겠느냐. 정치일정상 대선과 개헌이 같이 못간다”고 밝혔다. ‘조기 대선 전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야 대권주자 중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문재인 전 대표는 ‘개헌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문 전 대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대선 시기에 후보들이 공약으로 제시하고 다음 정부 초기에 개헌을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며 ‘대선 후 개헌’을 제시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현 시점에 개헌은 부적절하다”며 “대선 주자들이 대선 때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대선 주자 중 김부겸 의원은 지방분권 개헌 등을 주장하며 정면돌파형의 모습을 보인다. 김 의원은 “정권교체에 성공하더라도 정치가 교체되지 않으면 또 실패한 대통령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치교체를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문 전 대표가 앞성설 것을 주문했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12월23일 즉각적인 개헌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다만 조기대선 일정상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면 오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논의를 반대하는 문 전 대표를 겨냥, “개헌 논의를 반문(反文)연대와 연관시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23일 ‘개헌 이기는 호헌 없다’고 주장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만나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기도 했다.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촛불 민심엔 개헌 요구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지난 12월26일 민주당 의원 30여 명이 참여한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의원 모임’이 개헌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고, 민주당·국민의당 의원 70여 명은 다음날 개헌을 주제로 ‘미완의 촛불 시민혁명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민주당 비문(비 문재인) 진영과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개헌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 개혁보수신당과 반기문 ‘변수’
새누리당을 탈당한 30명의 의원이 (가칭)개혁보수신당을 추진하고 제4교섭단체를 구성함에 따라 개헌논의에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5선, 여주·양평)은 국민의당과 개헌연대를 위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혀 개헌을 고리로 한 합종연횡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는 또한 중도·보수 제3지대 빅텐트론과 맞물려 정치권 빅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 의원들로 구성된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은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를 초청, 개헌을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해 문재인 전 대표 측을 자극하기도 했다.
여기에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개헌 발언도 변수로 등장했다. 반 전 사무총장 지난해 말 충북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기)대선 전에 시간이 없어 개헌을 못 한다면 차기 대통령 임기 초에 서둘러 결정하는 게 좋다”면서 총선과 대선시기를 맞추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에 대해서 ‘유연한 생각’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여야 개헌론자들의 로드맵과 유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새해 들어 개헌 문제는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는 ‘문재인과 민주당 지도부, 유승민(개혁보수신당)’ vs 적극적인 입장인 ‘새누리당과 김무성(개혁보수신당), 민주당 비주류, 국민의당, 손학규, 반기문’ 등이 전선을 형성하면서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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