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선제 이후 청와대의 주인은 각각 보수와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의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아 왔다. 그런데 현재 대선정국에서는 마땅한 보수진영의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살다 살다 보수가 분열하는 거 처음 본다”는 한 야당 정치인이 꼬집는 말처럼 보수 여당은 이번 탄핵정국 중 분열해 버렸다. 그중 하나는 내홍을 겪느라 대통령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있고, 대권을 공식 선언한 다른 보수 정당의 후보들은 지지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잠재적 보수 정당의 후보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주 낙마했다. 민심이 정권교체에 있는 이상 보수 후보의 이번 청와대행은 어려워 보인다.
그러면 한국 보수 정당이 나아갈 길은 무엇일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영국 보수당의 사례는 참고할 만 하다. 강원택 교수는 그의 책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영국 보수당의 역사>에서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표해온 영국 보수당이 오늘날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로 당 지도자들의 과감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유연함”을 꼽았다. 마가렛 대처 수상 집권기와 같이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수당은 집권할 때마다 이전 노동당 정부가 수립한 국내 정책에 역행하거나 뒤흔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지기반을 넓혀 갔다. 국민 대다수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자처하는 영국에서 보수당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배경이다.
한국 보수 정당 역시 교조적인 원칙과 이념의 수호자를 자처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이번 위기를 과거와의 정치적 단절은 물론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당의 존립 목적은 권력 획득이다.
조의행
신한대학교 초빙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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