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그토록 지치게 하고 힘들게 했던 박 대통령 탄핵정국의 혼돈이 이제 끝을 보인다. 국회가 지난해 12월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고 곧바로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2일 만이다. 이날까지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단체는 광화문 집회를 통해 인용을 촉구하고 탄핵반대 단체는 태극기를 앞세우며 기각을 외쳤다. 그동안 양 진영 간에 어떠한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헌재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점차 법치주의 실현은 사라지고 이념 대결의 장으로 변모하면서 분위기도 험악해지고 있다.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불복하겠다며 전의까지 다진다. 탄핵 반대진영은 지난 8일부터 헌재 인근에서 3박4일 집회에 들어갔고 8일째 단식을 벌이던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권영해 공동대표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또 “이제 모여야 한다. 3월10일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태극기가 집결하는 날”이라며 세 결집 동참을 독려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찬성진영도 9일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고 헌재 선고 당일에는 탄핵 촉구 기자회견을 하며 압박수위를 높인다. 다음 날엔 ‘제20차 범국민행동의 날’로 마지막 촛불집회를 개최해 광장집회의 정점을 찍는다. 양쪽 진영의 단체들이 헌재 선고 후에도 대규모 집회를 추진해 극심한 국론분열과 혼란이 우려된다.
찬ㆍ반 진영 간에 자제력이 무너져 물리적 충돌을 벌일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할수록 선로 위를 마주 보고 달리는 급행열차처럼 양 진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헌재 판결은 존중되고 받아들여야 한다.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 수 있으나 단순한 의사 표현을 넘어 헌재 결정을 불복, 위협하는 행위는 결코 묵과될 수 없다. 정치ㆍ종교ㆍ법조계의 헌재 탄핵 ‘선고 존중’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야가 탄핵결과에 대해 입장이 다르지만 대선주자들도 헌재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공언한 점이다.
우리나라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의 민주주의의 길은 투쟁과 항쟁의 역사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1960년 4·19혁명을 밑거름으로 1979년 10월 부마항쟁, 1980년 5월 광주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이 과정에서 국민 의식은 성숙해지고 집회문화도 달라졌다. 그 대표적인 예로 ‘2002 월드컵’의 서울시청광장 응원이 꼽힌다.
당시 135만여 명이 모여 응원해도 떨어진 휴지 한 장 없는 나라로 세계인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탄핵정국에도 양 진영은 법 테두리에서 질서를 지키고 축제로 승화시키며 집회 문화를 한층 더 선진화했다.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라 내려진 결론을 차분하게 수용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는 것은 재차 말할 필요가 없다. 정치권과 양 진영은 헌재의 선고 이후 분열된 국론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며 갈등과 반목을 보듬어야 할 때다.
김창학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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