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국민 대통합이다] “법치주의 실현… 차기 대통령은 국가·민족에 헌신해야”

제목 없음-1 사본.jpg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 선고한 것에 대해 각계의 주요 인사들은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이제 결론이 난 만큼 판결에 승복하고 국민대통합과 화합에 온 힘을 쏟는 한편 5월 초에 치르는 조기 대선에서 올바른 후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심없는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보는 12일 역사적인 헌재 판결과 조기 대선의 의미와 관련, 목요상 전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정계), 이정호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법조계),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학계),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경제계)에게 의견을 들었다.

Q.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이번 헌재 선고가 주는 의미는.

목요상 = 한 마디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그런 내용의 결과가 아닌가 본다.

일부에서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너무 서두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나도 성급하게 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대통령 측에서 한 증인신청에 대해 (일부) 안 나온다고 직권 취소해버리고, 증거신청 한 것도 다 받아들이지 않고, 태블릿PC가 조작이 됐는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녹음파일이 나온) 고영태를 증인으로 불러서 확인도 안 했다. 속전속결로 결론을 낸 것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다소 잘못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이정호 =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리적 판단을 하는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이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헌재가 내린 결론은 ‘파면’이었다. 이는 법치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다. ‘법치주의’는 사후적 의미가 강하다. 예를 들어, 범죄가 일어났다면 사후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과 같다. 탄핵 또한 선출 이후 대통령 등이 잘못된 점을 바로 잡는 헌법적 절차다. 모든 출발에는 선거가 있다. 사전에 후보자를 잘 검증해 뽑았다면 혼란이 적었을 것이다. 선거가 의미를 가지려면 투표권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오동석 = 한국은 두 번의 군사쿠데타로 세 사람의 대통령이 나온 나라다. 박정희 대통령은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쿠데타를 다시 일으키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가 독재자가 빼앗은 국민의 대통령 직접 선임권을 되찾은 것이라면, 2017년 헌재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은 헌정질서를 유린한 권력자는 임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퇴출시킨다는 주권자의 의지를 관철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동안 국민이 직접 나서기 전까지 한국의 직업공무원제도와 대의민주주의체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온 국민이 대통령의 불법을 다 알아챘는데도, 검찰과 경찰은 불법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이었다.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책임을 통감하는 공직자는 입법, 행정, 사법 어디에도 없었다.

국회, 대통령, 법원, 헌법재판소 등 모든 헌법·국가기관에 권한을 부여한 이가 곧 주권자 국민이며, 헌법은 주권자의 말이고 글이며 뜻임을 공직자들은 망각했고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정대영 = 이번 탄핵 선고는 당연히 박 전 대통령의 헌법 파괴에 기인했다. 하지만, 국민이 촛불을 들며 사실상 탄핵 사태를 이끈 데는 고스란히 드러난 한국 기득권층의 민 낯이 있었다. 한국사회를 이끌어 가는 한 주요 집단인 재벌과 관료, 유력 정치인과 고위층의 정경유착 고리가 국민의 눈으로 직접 확인됐다. 더구나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이 많은 가운데 무능력한 기득권층에 대한 행태에 분노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회의 불공정한 경쟁, 소득격차와 계층 고착화의 이유를 고스란히 목격하게 됐다. 이번 탄핵은 한국 사회를 오래도록 지배한 특권과 특혜에 대한 경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Q. 헌재 판결 이후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통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목요상 = 헌재 판결에 승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결론이 났으니 승복하고 탄핵을 찬성(인용 주장)했던 쪽이나 반대(기각 주장)했던 쪽이나 앙금을 다 씻어내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다 같이 화합하고 대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

특히 국민통합과 화합을 위해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들이 여기저기 많이 나서고 있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국가를 위해서나 정치발전을 위해서나 보수와 진보가 각각 단일화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야 한다.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 쪽은 진보 쪽 대로 단일화해서 양자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더 발전될 수 있고, 나라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정호 = 헌재의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헌재 또한 이번 선고를 하면서 혼란을 종식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헌재가 만장일치로 결론 내린 것 또한 국론 분열을 막겠다는 의미다. 헌법 수호, 법치주의 수호는 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판결이라는 것은 언제나 한쪽에서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불복한다면 이는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일이 될 뿐이다.

이를 막으려면 정치인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인은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막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대선은 이미 정해졌다. 조기대선에 따라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국민에게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해 신뢰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오동석 = 통합은 봉합이 아니다. 박근혜 체제에서 저질러진 ‘헌법적 범죄’를 본격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기존의 법망으로 포섭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해서 형사적·경제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근혜가 파면을 납득해야 하듯이 그에게 협조했던 이들도 책임을 져야 함을 납득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체제에서 그동안 누가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권리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들이 국민으로서 동등하게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진상조사와 책임규명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들이 국민으로 회복하는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고 민주공화국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정대영 = 탄핵 과정에서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갈등 양상은 한국사회의 계층·세대 간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했다. 이것들을 어떻게 통합하고 해결하느냐가 이번 탄핵 사태 이후의 대한민국이 치러야 할 중요한 통과의례다. 경제적인 분야에서는 우선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할 정책이 있어야 한다. 이번 탄핵 사태는 특권과 특혜에 따른 불공정한 경쟁으로 시작됐다. 한국사회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 이상을 차지해 소득집중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국가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에 의해 이뤄졌다기보다 특혜와 정경유착, 기득권층에 대한 과보호로 소득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고착화 되고, 부가 일부 세력에게 집중된다는 걸 국민이 이번 사태로 확인하게 됐다. 불공정한 경쟁과 특권, 특혜를 없애지 않는 이상 국민 대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정경유착의 뿌리를 뽑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정경유착의 수사 선상에 있던 대기업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진행돼 재벌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Q. 조기 대선의 의미는 무엇인가.

목요상 =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은) 헌정사의 불행이다. 이번을 포함해서 대통령치고 무사히 넘어간 사람이 별로 없다. 결국은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미숙하다는 것이고, 대통령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심 없는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 지금까지 이 점이 상당히 미흡하고 모자랐다. 그래서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불행할 결과를 맞은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심 없는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태극기집회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이 상당히 격앙돼 있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보수층은 똘똘 뭉쳐서 좌파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게 하고 보수정권을 재창출하려고 했다. 헌재 판결이 이러한 보수층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다.

이정호 =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헌법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을 헌법 절차에 따라 파면하는 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탄핵 정국 동안 국민은 정서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겪었다. 결국 ‘예방’이 최선이라는 시각이 이번 대선에 반영될 것이다. 예방책은 곧 올바른 선거를 의미한다. 이번 대선에서 주권자들은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사전에 후보를 철저하게 검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기대선에 들어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후보의 정책은 무엇인지, 사람은 어떤지 꼼꼼히 살펴보고 뽑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통해 투명한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길 당부드린다. 탄핵은 결론이 났다. 이제 논의를 멈추고 사회통합과 조기대선에서 올바른 후보를 선출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오동석 = 개헌에 버금가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희망적이지 않다. 선거법 때문에 주권자 국민은 옳다 그르다, 누가 잘못했다는 발언을 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된다. 국회만 정신을 차렸어도 과거 불법과 부정의를 응징하고 민주공화국의 틀을 어느 정도 갖추었을 텐데, 자신들의 권력적 이해관계를 위해 개헌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각 정당과 각 대선후보자는 오로지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서 온갖 말을 쏟아낼 것이다. 침탈당하고 억압받으며 배제당한 사람들은 ‘국민통합’ 명목으로 다시 배제될 것이다. 정당 차원의 그리고 국정 전반과 미래를 바라보는 정책적 숙고 없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공약, 상대후보 깎아내리기 등이 난무할 것이다. 국회의원들과 지방정부까지 대선에 ‘올인’할 것이다.

정대영 = 국민은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을 오래도록 지배한 특권과 특혜를 확인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한 경쟁과 경제가 요구되는 시대다. 경제 불확실성이 대내외적으로 큰 상황에서 부패는 털어내면서도 기업의 활발한 경영 활동, 일자리 창출이 이번 조기 대선의 화두가 될 것이다. 반기업 정서가 확산하면서 대기업의 경영 위기론이 나오는 등 경제적 상황은 좋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국민이 신뢰하는 대한민국이 되려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필연적이다. 재벌기업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하고, 상호출자 제한과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 등 개혁사항을 하나씩 만들어가야 한다.

김재민·정자연·이관주·정민훈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