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한일합병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다양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순종은 고종을 이어 왕위를 승계하였으며, 일본의 강압으로 ‘한국’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였을 뿐 여전히 1926년 승하할 때까지 억압된 상태로나마 주권자로서, 우리 강역, 우리의 백성을 거느린 ‘한국’의 황제였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오를 저격한 후 ‘대한만세(大韓萬歲)’를 외친 것은 거사의 목적이 당시 존재하던 ‘한국’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데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3ㆍ1운동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니 그 목적 또한 ‘한국’의 억압된 주권을 회복하는 데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3ㆍ1운동 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는 1897년 ‘대한제국’에 기초하되, 다만 주권자를 황제에서 국민으로 대체한 ‘대한민국’으로 변경한 것뿐으로 1897년 대한제국의 연장이다. 즉, 한일합병조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소멸되지 않고 역사적으로 존속하고 있었기에, ‘한국인’들이 우리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해방투쟁 끝에 1945년 일본을 몰아낼 수 있었던 것이니, 어찌 1897년 건국된 한국이 소멸된 적이 있었던가.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가 일본으로 퇴각함으로써 한국의 주권을 옭아매던 억압의 사슬이 끊어져 주권이 되살아나 해방되었으니, 그래서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가 1919년 혹은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1919년에 건국되었다면, 그 이전에 순국하신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가 되찾고자 한 ‘한국’은 무엇이었던가. 1948년에 건국되었다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는 어느 나라 백성이었고, 우리 강토는 어느 나라 땅이었던가.
한일합병이 무효인 이상 1897년 건국된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게 억압을 받으면서도, 주권과 영토, 국민을 갖춘 국가로 존속하였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이래 삼국시대, 고려, 발해, 조선을 거쳐 대한제국까지 5천년 동안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고, 1910년부터 주권행사가 강제로 억압되었다가 1945년 ‘한국’의 주권을 회복하여 해방된 것이지, 결코 일본의 영토 중 일부를 할양받아 독립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헌법을 개정할 때, 헌법전문에 ‘단군께서 개국한 이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대한제국과 3·1정신으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개정하여 우리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민학기 변호사ㆍ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신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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