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재시험’ 상처입은 여경들에게

무궁화 봉오리 하나가 여물기도 전에 시들어 버렸다. 

서울 마포구에서 경찰시험 수험생 A씨(32)가 목을 매 숨진 것이다. 순경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를 앞둔 지난 23일이었다. 유서에는 “부모님께 죄송하다. 절망을 느낀다”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기자와 동갑인 친구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을 가슴에 묻으며 조의를 표한다.

 

여기 또 다른 미래 무궁화들의 찔린 상처가 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이 지난 18일 주관한 여경시험 고사장에서 시험이 40분 지연되면서 유례없는 재시험을 치르기로 한 게 그것이다. 700여 명의 여경시험 수험생들은 시험이 끝났다는 당장의 해방감도 잠시, 느닷없는 족쇄가 다시 채워졌다.

 

당일 시험을 잘 봤던 이들이 느꼈을 상실감은 숨진 A씨의 압박감처럼 짐작조차 안 간다. 재시험의 불명예로 인해 여경시험을 주관한 실무진들은 강한 징계를 받을 듯하다. 안타까운 점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의 여경시험 주요 실무진인 경무과장, 교육계장 등도 여경 수험생들이 간절하게 합격되길 바라는 바로 그 ‘여경’이라는 사실이다.

 

사고의 원인은 시험을 치를 역량이 부족한 신생 경찰청임에도 그간 지원에 인색하며 방치한 점이 가장 크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경찰청과 행정자치부가 화살의 대상이다. 마초(Macho:스페인어로 지나친 남자다움을 의미) 집단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려 열심히 일한 여경들이 징계를 받는다는 건 ‘네가 총대를 메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대들은 아찔함을 느껴야 한다. 10년 후 당신들 또한 오늘의 선배 여경처럼 조직의 무능함 앞에 등 떠밀려 총대를 멜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장의 여경들이 국가에 투신하겠다는 초심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처럼 현실의 늪에서 표류한 지 오래다. 어깨에 핀 무궁화가 날카로운 올가미란 소리다.

 

수험생들을 포함해 여경들은 이번 사고로 다 함께 상처를 입었다. 화려할 줄 알았던 여경의 ‘민 낯’을 먼저 봤다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편이 속 시원하겠다. 4월 29일 볼 재시험 날에는 원하는 무궁화 봉오리가 활짝 피길 바란다.

의정부=조철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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