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쓰레하지만, ‘금도끼 은도끼’ 동화에 나오는 산신령이 되어 보라는 충고가 곧잘 먹힌다. 나무꾼을 조직의 임원이나 관리자에 비유하여 산신령처럼 행동해 보라는 뜻이다. 즉, 애초에 원했던 헌 쇠도끼를 능가하는 금도끼, 은도끼라는 대안까지 제시하는 태도와 능력에 방점을 두었다.
도끼 찾아 달랬더니 해질녘에 나타나 ‘다 찾아 봤는데 없소’라고 보고하는 산신령을 조직의 나무꾼은 좋아하지 않는다. 과정이야 어떻든 빈손의 산신령은 나무꾼에게 가용한 시간만 낭비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도끼 찾는 목적과 용도를 파악해서, 여의찮으면 자기 대안이라도 찾아 내보이는 것이 역량이다. 당초보다 탁월한 금도끼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문제는 소통이다. 관리자 중에는 빈약한 디테일을 들어내기 싫어서 질문을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말도 못 알아듣습니까!’로 핀잔주기 일쑤이다. 결핍된 관계는 나쁜 관성을 만든다. 시나브로 직원들도 물어보는 행위를 무능의 소치로 여기게 된다. 소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풍토가 정착된 것이다. 사라진 질문은, 과거지사를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동태적인 지금의 환경에서 조직의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한다.
‘금도끼 은도끼’의 원작은 고대 그리스의 이솝우화이다. 이미 중세 때부터 ‘강이 매번 금도끼를 선물하지는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었다. 질문을 금기시 하고 속칭 ‘삽질’을 조장하는 조직의 관리자들이 유념할 경구이다. 그러고 보니 이솝우화에서 산신령으로 등장하는 헤르메스는 길을 안내해 주는 친절한 신이자, 저승길까지 인도하는 저승사자이기도 하다.
우형록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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