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안에도 정말 평등이 자리 잡은 것일까? 소위 말하는 ‘갑질’, 나아가 인격을 몸값과 동일시하는 현상은 뭘까? 티코는 티코의 인격, 벤츠는 벤츠의 인격이 있다. 타워펠리스와 임대아파트의 인격이 다르고, 인간의 가치가 VVVIP클래스부터 기초수급자까지 다양하게 매겨진다. 과거엔 양반에서 천민까지 네 계급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비가시적 신분제가 더 확대, 심화된 듯하다.
마르크스는 순진했다. 부르주아를 전복하여 평등하게 만들어주면 다 행복해할 줄 믿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망했다. 왜? 평등했기 때문이다. 사는 수준이 모두 고만고만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너무 착하게 봤다. 인간은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는 영악했다. 개인주의라며 마음껏 불평등해지라고 했다. 공정경쟁과 기회균등의 원칙이란 이데올로기로 허구적 평등을 감추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포장했다.
세상은 몰라도 인간본성은 변하기 어렵다. 권력과 부를 향한 비교욕망은 자신과 타인들과의 평등한 삶을 거부하게 되어 있다. 왜 ‘모두의 행복’이란 정치인들의 공약이 당선되면 ‘자신과 주변인만의 행복’으로 변질되고 부패하는가? 차별화되고 싶은 욕망에 날개가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두 종류의 권력자만 있는 듯하다.
실제 권력을 가진 자, 그리고 머리 속에만 권력이 가득한 자.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을 국가의 리더로 세울 수 없는 본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적인 평등은 차치하고 불평등만이라도 최소화하고 싶다면 개인이 구조를 지배하지 못하고 구조가 개인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문재인 후보 캠프에만 폴리페서가 1천명이 모였다고 한다. 정치철새들을 보면 하나같이 참 말들이 그럴 듯하다. 나라 걱정들을 얼마나 들 하시는지. 하지만 영혼엔 결국 한 가지 생각뿐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그러니 이번 정권에서도 한탕 해야지!’
김봉규 미래행복인재연구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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