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세월호와 촛불 그리고 대통령선거

▲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헌정질서파괴를 복구하고 새로운 헌법체제를 꿈꾸는 촛불집회는 3주기를 하루 앞두고 희생자 304명을 추모했다. 마침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은 17일부터 선거운동을 개시했다. 참사를 딛고 촛불시민의 명령에 복무하는 대통령을 선출해 새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희망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변화는 현상(現狀)을 제대로 진단해야 가능하다. 참사의 밑바탕에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기조가 있었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폐습이 있었다. 숱한 안전사고 속에서도 규제완화를 강요했던 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까지 더한 결과가 세월호 참사였다. 대통령의 국정농단은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였을 뿐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합작품이었다. 관료제는 국민 아닌 권력자의 편이었다.

 

군주체제가 아닌 이상 대통령을 갈아치운다고 재벌 총수를 구속한다고 민주공화국체제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은 국가시스템 재정비를 요구함으로써 주권자가 되었다. 진상조사와 책임 규명과 문책 그리고 재발방지 마련 등 정부와 국회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의 국정농단조차 무능한 국가체제가 감당하지 못하자 더 많은 민주시민이 직접 나섰다. 촛불시민은 국회와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냄으로써 또한 주권자가 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모두들 대통령 후보자를 바라본다. ‘갈채’가 횡행한다. 과거의 1인을 또 다른 1인으로 바꾸는 것은 ‘혁명’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주권자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다. 

누구와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 그 협동역량을 평가할 일이다. 대통령은 혼자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결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어느 정당도 국회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헌정유린에 협력한 세력의 몽니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을 단순히 고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인권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를 행동할 수 있는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주권자다. 후보자의 귀를 먼저 열어야 한다. 이 나라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목소리를 다 들었냐고, 누가 책임을 어떻게 지고 무엇을 할 거냐는 질책을 들었냐고 물어야 한다.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군 등 제왕적 대통령을 떠받들고 있는 권력기관을 어떻게 주권자의 뜻에 따르게 할 거냐는 문책을 들었는지 물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인간다운 삶으로 회복할 것이며, 그 삶을 파괴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노동자들의 고함소리를 들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개별 정책의 차원이 아니다. 나중의 개헌이 아니라 지금 헌법체제 차원의 진단과 해결 방안이 먼저다. 유권자의 표만 구걸하는 이는 표를 얻는 순간 군림할 것이다. 그는 표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자신의 표가 아니라고 판단한 주권자를 이미 버리고 있다. 주권자에게 복무하는 대통령을 만들려면, 누가 주권자로서 대접받고 있지 못한지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도록 해야 한다.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말로써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을 다시 말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될 자격 있는 자가 모든 국민을 주권자로 인정하게 하는 선거운동 방식이다. 미래를 약속할 게 아니라 현재를 말하도록 해야 한다. 세월호는 그 현재의 현실이자 상징이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