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도니제티와 키스펩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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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G. 도니제티는 E. 스크리브의 희극<미약(媚藥)>대본으로 2막 오페라 부파 <사랑의 묘약>을 작곡했다. 주인공 네모리노와 연인 아디나의 사랑을 다룬 유쾌한 멜로드라마다. 떠돌이 약장수에게 속아 싸구려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으로 알고 마신 네모리노는 아디나의 마음을 얻을 것이라고 우쭐댄다.

네모리노의 삼촌이 죽어 그에게 거액이 상속된다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정작 자신은 술에 취해 그 사실을 모른다. 돈을 보고 여자들이 주변에 몰려들자 네모리노는 자신의 인기가 묘약의 효능이라고 굳게 믿는다. 묘약에 대한 사연과 약값으로 빚을 진 네모리노가 군에 입대한다는 사실을 약장수가 전하자, 네모리노의 사랑에 감동한 아디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네모리노는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을 부른다. 사랑이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고 죽음도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그런 돌팔이가 팔던 ‘묘약’의 진짜 성분을 찾았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성욕을 자극하는 뇌 호르몬 물질 ‘키스펩틴(kisspeptin)’이 사랑의 감정영역까지 영향을 준다고 영국 과학자가 발표했다. 나이 든 성인에게 이 호르몬을 투여해도 사춘기 남녀처럼 애정 관련 뇌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육체 결함의 보조약품을 넘어 감정을 뜨겁게 변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의 묘약임에 틀림이 없다.

 

한 결혼정보회사는 회원 3천명을 분석한 결과, 지난 3년간 평균 초혼연령이 남성 36세, 여성 33세였다고 발표했다. 10년 전보다 2.5세나 늦어졌다. 통계청 최근 5년간 데이터에도 맞벌이 부부와 무주택 부부의 자녀 비중이 낮게 나타났다. 집을 장만하고 아이 낳아 교육시키는 일이 큰 부담이라는 의미다. 그런 부담을 짊어질 만큼 결혼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비혼(非婚)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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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인구가 줄어드니 학령인구도 줄고 있다. 학교는 점점 문을 닫을 것이고 대학들은 이미 신입생 모집에 사활이 걸렸다.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국가 구성의 심각한 훼손이다. 신생아가 너무 많아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던 시절도 있었다.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자녀 양육하고, 노년을 사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할 사회 공공재가 된 것이다.

 

묘약이 없어도 인류는 사랑을 하고 자손을 낳았다. 결혼하기 싫은 게 아니라 경제 문제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국가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대출받은 대학등록금 변제와 병역 의무에 시간을 잃은 청년에게 결혼이란 스스로 넘기에 불가능한 벽이다. 젊은이들이 행복한 ‘키스펩틴’ 감정으로 연인과 아리아를 부를 수 있게 사회의 틀을 짜는 일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일까.

 

“Che piu cercando io vo? Si, puo morir! d’amor......”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그래요, 나는 죽을 수 있어요. 사랑을 위해서라면......)

 

주용수 작곡가 / 한국복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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