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싼 돈 내면 순서 앞당기는 에버랜드 / 놀이동산조차 돈 없으면 흙수저인가

놀이동산에서 어른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순서 기다리기다. 인기가 있는 코스다 싶으면 여지없이 대기자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곳부터 2시간’ ‘이곳부터 50분’이라고 적힌 안내문에 짜증부터 난다. 그래도 대부분 이해하고 질서를 지킨다. 누구 하나 새치기하지 않는다. 한 걸음씩 다가가며 맞보는 설렘으로 이해한다. 놀이동산 줄 서기는 어느덧 우리 사회를 규율하는 양보와 준법정신으로 자리 잡은 문화다.

그런 놀이동산의 대표적인 곳이 에버랜드다. 그중에도 ‘로스트 밸리’는 대기 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2013년 500억원을 들여 도입한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코스다. 주말이면 3천여 명이 몰리면서 대기 시간만 2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대기자들 옆을 그대로 통과하는 ‘특급 대우 관람객’이 등장했다. 이른바 ‘포토 패키지’라는 티켓을 구매하는 관람객에게만 주어지는 합법적 새치기권(權)이다.

‘포토 패키지’는 사진을 찍어 액자를 만들어 주고,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는 상품이다. 물론 돈을 더 내야 한다. 3만원(2인)~4만원(4인)에 팔린다. 자유이용권과 식사권이 포함된 패키지로 구입하면 1인당 8만1천500~11만9천원이다. 어린 자녀와 주말을 보내기 위해 찾는 일반인들에겐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결국, 값싼 입장권 관람객은 한두 시간씩 기다리고, 비싼 입장권 관람객은 그대로 통과하는 ‘차별 티켓’이다.

놀이동산의 장삿속이 어제오늘의 일이냐고 넘길 수도 있다. 이런저런 우대를 미끼로 차등 상품을 파는 곳이 에버랜드뿐이냐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 같은 입구에서 입장권의 가격에 따라 누구는 줄 서고, 누구는 그 옆을 그대로 통과하는 시스템은 옳지 않다. 돈 없는 관람객들에게 ‘부러우면 비싼 티켓 사라’고 비웃는 것이나 다름없다. 놀이동산에까지 파고들어간 흙수저 금수저 차별 조장 모습이다.

아무리 경영 수익 극대화라도 배려가 필요하다. 적어도 찾아오는 관람객들에게 굴욕감과 모멸감을 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롯데월드가 운용하는 ‘매직 패스’ 제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하루 30매(전체 놀이기구 프리패스), 70매(놀이기구 5종 프리패스)로 한정 판매한다. ‘돈’으로 인한 차별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놀이동산인 에버랜드라면 이런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용자 편의를 위해 운영 중인 제도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에버랜드 측 해명이 “‘돈 있는’ 이용자 편의를 위해 운영 중인 제도라 문제 될 것이 없다”로 들리는 것이 우리만의 청음(聽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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