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불편한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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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결정으로 대통령 선거일 바로 다음 날 취임과 동시에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인선작업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쌓인 피로를 풀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새 정부의 국정 열차는 이미 출발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 수가 적어 매 사안 토론을 거쳐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였지만, 현대는 선거를 통하여 다수결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에게 국민의 주권행사를 위임하는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구체적 사안마다 국민 개개인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기 어려워 대표자에게 일괄 위임하고 그 대표자의 결정에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의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의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서로 지지자가 달라도 선거를 통해 당선자가 일단 결정되면 그 결과에 승복하고 당선자는 소수자의 의사도 존중하기로 사전에 약속하는 것이다.

 

여전히 주권자는 운명공동체인 전체 국민인 것이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도 새 정부에 무작정 거부와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은 칭찬하고 아니면 지적하는 건전한 비판적 지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로 한 대의민주제의 본질, 바로 여기에 있다.

 

광우병 사태처럼 정권 초기부터 갓 출발한 국정 열차를 과도하게 흔들어 추진 동력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 된다. 새 대통령도 자신을 지지한 41%의 국민보다 반대한 59%의 국민들이 더 공감할 수 있도록 국정운영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과거 독재정권이나 군사정권은 국민적 정당성 부족으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자신들과 생각을 같이하거나 추종하는 사람들만 등용하는 소위 코드인사를 많이 하였다. 당시에는 이처럼 인사 면에서도 민주정치와 거리가 있었다.

 

새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이나 선거 캠프에 있던 사람, 같은 정당 사람만 등용하지 말고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정책과 정무에 밝은 검증된 인재라면 과감히 선발하는 불편한 정치를 하여야 한다. 조선 중기 서인의 거두 송시열과 반목한 남인 허목은 주자학만이 절대가치가 아니고 다른 학문도 진리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렸다. 

단지 경전 해석을 달리하는 그 ‘다름’조차도 곧 틀림이며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는 순간 그곳에는 민주주의의 향기조차 스며들 여지가 없다. 알베르 까뮈도 페스트에서 ‘스스로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순간 종말은 시작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새 정부에는 더더욱 코드인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삼성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미꾸라지와 천적 메기의 일화는 편안함은 곧 나태함이며 불편함은 긴장감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 노예 해방의 대통령 링컨은 조국을 위해 유능한 인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반대당 출신인 몽고메리 블레어 등 정적을 내각에 불러들였고, 세종대왕도 양녕대군 쪽에 줄을 섰다가 유배까지 간 황희 정승 등 인재를 중용하였다. 현명한 지도자는 국민을 위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정책은 그다음 문제다.

 

최근 청와대와 내각인사는 불편한 정치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정적과 천적을 중용하는 불편한 정치는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협치와 통합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불편한 정치는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의 첫걸음이다.

 

이정호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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