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은 독주보다 재미가 있어 지루한 줄 모르고 연주한다. 내가 낼 수 없는 음역과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준다. 어떤 형태의 합주라도 대체로 주선율을 서로 돌아가면서 연주한다. 들어감과 나감을 반복하면서 포기와 양보의 때를 알게 된다. 연주의 성과가 공동의 몫이 된다는 측면에서 앙상블은 사회생활의 축소판이다. ‘나’는 절제하며 성장한다. ‘나’가 성숙해져 ‘우리’안으로 편입한다. 거기에서 ‘나’는 사라지고 앙상블 ‘우리’가 만들어진다.
축구는 다른 구기종목보다 제한이 엄격하다. 정확성이 낮은 머리와 두 발을 사용할 뿐, 방망이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며 손도 쓰지 못하는 것이 매력이다. 야구의 도루와 비교해서 축구의 오프사이드는 꽤 신사다운 규칙이다.
지난 19일 FIFA 월드컵 U-20 축구대회가 시작되었다. 6월 11일 수원경기장에서 결승전과 준결승전이 열릴 예정이다. 축구경기도 앙상블이다.
공격수가 드리블하며 만드는 선율과 좌우날개가 연결하는 오브리카토, 수비수가 받쳐주는 화성, 미드필더의 안정된 리듬, 수문장의 듬직한 베이스가 함께 연주하는 장엄한 음악을 들어 보자. 공연장의 커튼콜은 경기장의 함성으로 들려올 것이다.
안정된 경기는 조직력에 기초한다. 2014 브라질월드컵 4강 경기에서 네이마르 선수의 결장으로 동력을 상실한 브라질 팀은 조직축구를 구사한 독일 팀에 1:7로 처참하게 무너지는 수모를 겪었다. 축구경기가 조직력과 소통으로 결과를 만들어 내듯이 사회도 앙상블을 이루지 않고서는 강해질 수 없다.
구조가 잘 짜진 음악에는 논리가 흐른다. 소통을 잘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에는 리듬이 살아 있다. 역할이 다른 선율들로 구성된 다성음악(polyphony)은 복잡하게 엉키면서 거대한 음향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가 많고 서로 의견이 달라 늘 갈등을 겪지만, 축구경기와 합주앙상블이 가진 공감의 마법으로 해결을 찾아보면 어떨까.
주용수 작곡가·한국복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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