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피가로와 민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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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초연한 모차르트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은 18세기 이탈리아 코믹 형식이다. 루이 16세가 몹시 불편해했다는 보마르셰의 희극 작품으로, 주인과 하인이 평등의 시대로 가는 사회 변혁의 작은 희망이 작품 안에 담겨 있다.

알미비바 백작은 하녀 수잔나의 첫날밤을 차지하려고 수작을 건다. 연인 피가로는 기지를 발휘하여 백작에게 골탕 먹일 계획을 짠다. 컴컴한 새벽녘 수잔나로 가장한 백작부인이 정원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이 사실을 모른 채 그녀에게 다가간 백작은 부인을 보자 몹시 놀란다.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백작을 부인이 용서하면서 끝이 나는 단순한 내용이다.

 

프리마 녹테. 결혼하는 하녀의 초야권을 주인이 강탈한 것으로, 영화와 문학의 소재로 자주 인용된다. 오늘날에는 현실성이 없지만, 하인을 가축과 같은 재산으로 여기고 신분으로 인권을 유린하던 시절의 부당한 이야기다.

 

지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군형법 제92조 6항(추행)에 대한 판단을 논쟁의 이슈로 삼았다. 최근 동성애를 행한 장교에게 군사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정의당은 영외에서 양자 합의 행위라 해도 처벌하는 현행법을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 보고 관련법 개정을 발의했다. 군 조직의 특성과 개인 삶의 의미 확장 사이에서 합일점을 찾아야 하는 무거운 과제다.

 

다른 존재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으나 맞거나 틀린 것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사회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다름’으로 자주 충돌한다. 가치와 관습은 진리가 아니다.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인데, 이를 절대화하면 갈등을 부른다. 성(性) 정체성을 ‘옳음’과 ‘그름’으로 판단하여 저주에 가까운 증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동성애자가 군 생활에 부적합하다면 대체복무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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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독일의 한 미술전시회에서 겪은 일이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작품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일정한 거리에서 나를 살펴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작품이 아주 맘에 들어 모퉁이를 돌아서며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가 다가와 ‘촬영이 불가하니 더는 찍지 말고 필름도 공개 사용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의 대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내가 뷰파인더로 보는 것만으로 이후 행동을 예단하지 않은 점과 행위 후에야 과오의 책임을 물은 점이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선택을 수용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진보하고 있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해야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 새 정부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들을 가슴 뜨겁게 한 미담의 본질은 상대존중과 인간다움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몰입하면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소수자가 된 피가로들…이제는 사회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주용수 한국복지대학교 교수·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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