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검게 그을린 얼굴에 담긴 농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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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촌은 그야말로 수난의 현장이자 ‘종합병원’이었다. 연초부터 AI로 시작된 병세는 산불과 우박피해로 점점 악화하더니, 본격적인 영농작업으로 바쁠 시기에 찾아온 전국적인 무더위와 가뭄 탓에 고열을 동반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지 하루 만에 거짓말처럼 재발한 AI로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져 있다.

 

농촌이 어렵다는 말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올해 들어 특히 심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적한 시골에서 조그맣게 텃밭을 가꾸시고 계신 아버지조차 힘들다는 소리를 하실 정도이니 말이다.

 

‘언론홍보’라는 업무를 맡고 촬영차 다양한 농촌 현장을 누비면서 언제부턴가 농업인들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와중에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힘든 농사일로 인해 검게 그을리고 주름 깊은 얼굴에서 일상의 고단함은 엿보이지만, ‘절망’이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 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 농사일이기 때문에 올해 농사가 안되면 다음해는 잘 되리라는 농촌 특유의 낙천적인 사고 때문인지, 아니면 평생을 농사일하며 농사밖에 모르고 살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런 요량인지 알 길은 없지만, 문득 이것이 바로 그렇게 찾고 찾던 농촌문제의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도전정신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이제 농촌은 답이 없다는 시선으로 이른 아침부터 땀을 흘리는 농업인을 병약한 환자 혹은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는 경향이 생겼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정작 농촌의 주인인 농업인은 버리지 않았는데 우리가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의 골이 깊어져 언젠가 그분들까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앞선다.

 

‘농번기에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속담처럼 지금 우리 농촌은 막바지 영농에 분주한 시기로, 일손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도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해마다 가축질병, 가뭄, 태풍, 폭우 등 샐 수 없는 내상을 입은 가운데, 수입농산물 개방 등 각종 외상으로 골병이 들어가는 농촌에서 힘들게 병마와 싸우는 농업인의 거칠어진 손을 잡아주고 ‘그럼에도’ 힘내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이야말로 농업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은 멀리 농촌까지 출장을 나가지 않아도 주변에 검게 그을린 얼굴을 자주 보고 있다. 고통에 신음하는 농촌을 살려보겠다고 휴일도 반납하고 일손돕기를 나간 직원들이 다음 날 출근해서 하나같이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하루쯤은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농촌으로 나가 농업인과 막걸리 한 잔 기울이는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수원 농협 경기지역본부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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