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악성민원과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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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컨슈머(Black Consumer). 법적 용어는 아니지만, ‘억지주장이나 부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화장지를 풀어 길이를 재고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기업체를 협박했다거나, 스스로 식품에 이물질을 넣고 식품업체에 거액의 보상을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난해에는 전자상거래의 청약철회제도를 악용해 계약을 취소한 후 물건을 돌려주지 않고 다른 곳에 판매해 부당이득을 취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소비자피해나 분쟁이 발생하면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국에 약 250개 회선이 있는데 대부분의 상담을 소비자단체의 상담원이 처리하고 있다. 일선 상담원들은 날이 갈수록 소비자상담이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악성민원인 때문이다.

 

구입 후 몇 번이나 착용한 의류를 맘에 안든다고 반품하겠다는 사례, 제품을 구입한 후 알아보니 다른 곳에서 더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으니 취소하겠다는 사례, 사업자의 불친절에 감정이 상했으니 보상을 받게 해달라는 사례 등… 소비자문제가 아니라 민사문제로 풀어야 할 사건이나 민사로도 풀기 어려운 소비자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소비자상담원의 고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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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그 자리에 왜 있느냐?”, “소비자가 아니라 사업자편을 든다”와 같은 비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나 험담을 듣기도 한다.

 

소비자상담원은 소비자편을 드는 사람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정부에서 만들어 놓은 기준(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근거로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악성소비자의 불만표출은 자신의 요구대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싸움을 말리는 사람을 욕하는 꼴이다.

 

최근 일부 사업자가 소비자의 정당한 소리를 ‘블랙컨슈머’라 하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가 패소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소비자와 사업자가 상생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자의 정당한 목소리는 분명히 사업자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악성소비자는 사라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소비자상담원과 같은 감정노동자는 소비자나 사업자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도에서 감정노동자 보호 조례가 시행됐고, 법률로도 제정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반길 일이라 하겠다.

 

박명자 소비자교육중앙회 경기도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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