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시원했다. 권위주의적인 통치구조가 사라진 듯했다. 일방적인 하향식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내가 대통령과 함께 차 마시고 식사하면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듯했다. 정부의 의사결정에 나도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때문일까. 최근 정부의 모습은 우리가 염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물론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가지고 현 정부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정부가 과거의 정권과는 다른가, 권력의 속성이 변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는 모든 국정을 정부가 주도하고자 한다. 물론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부(권력)가 주도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권력은 저항하는 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는 힘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 뜻’, 즉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는 반드시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성 확보의 가장 좋은(쉬운) 수단은 다수의 지지이다. 그런 면에서 80% 지지라는 여론조사의 결과는 현 정부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80%라는 지지율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기영합주의에 의한 다수의 지지는 물거품이다. 정책운영은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정권창출을 위한 선거과정은 이미 끝났다. 우리는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있는 ‘인기있는 대통령 후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국정철학을 지닌 믿음직한 대통령을 원한다. 때로 큰 새(지도자)는 큰 바람(대중)을 거슬러 날아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다수에 의한 전반적 지지만을 정책결정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사안에 따라서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소수의 의견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당성을 지닌 소수를 무시하고 가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남용이다. 다수와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더 필요한가가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내 편과 네 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은 한 당, 한 편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사적이고 어느 한 쪽 편에 기울어진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장기적 국정 비전을 가지고 사회통합을 위해 고민하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촛불의 힘이 자칫 “정치세력 간 타협의 산물(필립 슈미터)”에 불과하게 되고, 시민참여의 승리가 단지 권력의 이동에 그칠까 두렵다.
최순종
경기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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