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3대째 이어온 박스제작 업체
반려동물 장례문화 새로 쓰는 부녀의 도전
반려동물이 단순한 애완동물을 넘어 가족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의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개선할 수 있고,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성 강화와 정서적인 안정, 신체적 면역기능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반려동물은 사람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많은 장점을 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선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가족을 잃은 것 못지않은 펫로스 증후군의 피해를 줄이고자 ‘품위 있게’ 반려견을 보내고, 또 다른 반려견을 쉽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이 있다. 국내 최초로 종이를 이용한 관(棺)을 만들어 장례 용품을 브랜드화시킨 ‘대우포장기업’의 이야기다.
3대째 박스 제조를 해오다 최근 장례용품 브랜드 ‘이별이야기’ 사업체를 새롭게 런칭한 김록겸(60)ㆍ김희숙(29) 부녀를 만나 그동안 이어온 가업 이야기와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어봤다.
◆ 50여 년 이은 종이박스 제작 가업…새로운 ‘종이관(棺) 사업’에 3대의 꿈 담아
김록겸 씨가 대표로 있는 대우포장기업은 종이박스를 만드는 제조업체다. 대구 달성군의 여느 농촌 청년이었던 그의 부친(79)이 1970년대 초 산업화 시작 이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상품 포장을 재가공하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부친의 사업 악화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업을 이었다. 직원과 거래처 간의 문제, 수금의 어려움 등으로 사업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기존에 흔치 않던 방수 종이, 반도체 보존 골판지 등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발과 도전으로 연간 3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김포시 하성면에 자리 잡은 대우포장기업은 이제 그의 둘째 딸 희숙 씨가 3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제2의 도약에 나서고 있다. 3대의 꿈을 담아 부녀가 함께 개발한 ‘종이관(棺) 사업’을 통해 장래용품 브랜드인 ‘이별이야기’ 사업체를 최근 새롭게 런칭하면서 부터다.
희숙 씨는 “반려동물이 로드킬을 당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하고, 펫로스 증후군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면서 “수년간 함께 해 온 가족을 품위있게 보내고, 또 쉽게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수 있게 도울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종이박스를 접목시킬까? 하는 마음에 남들과 차별화된 장례용품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개발 배경을 소개했다.
이어 “최근 반려동물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동물화장 문화도 확산되고 있지만, 사망 시 입히는 수의가 반려동물을 위한 용품이 아닌, 사람이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는 구색 맞추기에 만연해 낙후된 실정”이라며 “종이관으로 시작했지만 부족한 면면을 보완해 죽음을 준비하는 시작부터 마지막 추모하는 메모리얼까지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대기업도 박찬 ‘이대 나온 여자’…이제는 사업가로 과감한 도전
이별이야기 대표를 맡은 희숙 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졸업 후 국내 유명 대기업에 취업해 경영전략실에서 근무하던 희숙 씨는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와 3대째 물려받은 사업가 피(?)를 무기로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일본에서 유래한 반려동물 화장 문화 사업은 무작정 벤치마킹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시스템을 파악해야 하는데 내겐 너무 어려워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딸에게서 강한 사업 성향을 지녔다는 느낌을 받아 왔기 때문에 좋은 직장에 다녔더라도 후회는 전혀 없다”고 웃음을 내보였다.
희숙 씨 역시 “워낙 성취욕이 강해 회사에 있기보다는 내 회사를 맡아 사회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남들 보기에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향후 이 일의 끝에서 하나의 사회를 움직였다는 보람을 느낄 것 같다”고 소신을 밝혔다.
희숙 씨는 본격적인 사업 전선에 뛰어들며 열정의 온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미 ‘장례지도사’는 물론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잘 몰랐던 분야인 만큼 열심히 공부해 선진국의 문화를 따라잡겠다는 야심 찬 포부로 가득하다.
하지만, 애로사항도 많다. 그는 “초기에 빨리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려움을 못 느꼈는데, 사실 요즘 포장ㆍ인쇄업은 효율성 때문에 대기업으로 몰려가는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투자 가치가 있을까 하는 고민과 3대를 이어간다는 부담감, 책임감에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제조업 나름의 메리트와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는 단계의 경험, 기획ㆍ제조ㆍ마케팅 전 과정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희망을 본다”고 자신감도 내비쳤다.
이제 부녀지간이라기보다 사업 동반자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듯싶다. 2년 전 장례용품 브랜드화 구상에 대한 시작부터 본격적인 기획, 출시와 인터넷 오픈을 한 최근 2개월 전까지 이들은 서로 다른 업무 스타일로 갈등과 대립의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고, 각자의 장점을 받아들이며 시너지 효과도 내고 있다.
희숙 씨는 “업무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인원이 적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액션을 먼저 취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스타일이어서 답답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강한 추진력도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목표를 이뤄내는 사람이 진정한 사업가 아니겠는가. 이런 점은 배우고 싶다”고 웃음을 내보였다.
김씨는 “제조업인 대우포장과 아이디어 회사인 이별이야기는 성격이 다른 회사로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해야 하는데 딸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추진력과 결단력 면에선 아직 부족하다”면서도 “고객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보스가 아닌 리더의 특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2년 동안 서로 갈등과 보완을 이루다 출시한 이별이야기는 친환경적인 소재와 독창적인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으로 2개월 만에 별다른 홍보 없이도 반려인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하루 20여 통의 주문 전화와 매일 100여 명이 넘는 인터넷 사이트 방문자 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 반려동물 전체 시장 아우르는 ‘인프라 구축’이 목표…향후 ‘반려견 문화센터’ 건립도
장례문화의 상품화는 사실상 엔딩 사업이다. 하지만, 엔딩은 또 다른 시작과 맞닿아 있다. 이 업계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장례’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한 부녀는 앞으로 반려동물의 출생에서부터 살아가는 과정 전반에 대한 테마별 사업을 준비할 계획이다.
반려동물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김 씨는 “장례용품의 브랜드화 이후에는 반려동물이 사람들과 교감하는 문제를 다룰 계획”이라며 “사람을 근본으로 반려동물이 사람을 더 잘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반려동물 문화센터’를 건립해 센터 내 공원 조성과 다양한 교육 콘텐츠, 반려동물 라이프 사이클에 맞춘 프로그램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사실상 센터건립을 위한 부지 매입도 끝나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이 분야의 첫 주자로서 모범적인 콘텐츠를 구성하고, 내 회사ㆍ내 사업이라기 보다 반려시장 전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에서 건너온 화장 문화의 배울 점도 많지만, 앞으로 장례문화 시장을 구축해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희숙 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아직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로부터 꾸준한 연락을 받으며 좋은 시작을 보내고 있다”며 “책임감을 갖고 반려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례업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어 “우리 삶에 녹아든 반려동물은 안정감과 상실감이 공존한다. 가족을 보낼 때 최소한의 예식을 갖추는 것이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착한 가격과 좋은 품질로 예식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한 만큼 반려인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남양주=하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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