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코리아 패싱과 국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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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가을 그리스 근무를 마치고 본국 귀임을 앞둔 필자 부부가 초대된 한 만찬 석상에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남북한의 통일전망이 화제에 오르게 됐다. 놀랍게도 필자 앞좌석의 아시아지역 영어권 우방국 대사가 자신은 한국의 통일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면서 첫째 중국은 미군이 주둔한 통일한국을 수용할 수 없으며 둘째 통일된 한국은 과도한 민족주의적 경향이 우려된다는 취지로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당시 필자는 좌중에게 한국이 통일되면 낙후된 북한경제의 개발을 위한 새로운 투자기회가 창출돼 동북아지역 경제의 활성화 효과가 기대됨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통일을 호의적으로 보도록 설명하였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이 경험을 계기로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우방국도 한국의 통일을 부정적으로 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통일에 이해관계가 큰 주변 국가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가 새삼 크게 다가왔었다.

 

최근 미국에서 전직 고위관리가 북한 ICBM과 핵무기 위협이 현실적이 됨에 따라 미 정부에게 한국의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북한 김정은 정권의 교체와 남북분단의 영구화를 중국과 빅딜하는 방안을 협의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한국은 배제된 채 미ㆍ중에 의해 분단의 영구화가 결정되는 시나리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러시아 간 한반도의 분단이 합의되는 역사의 판박이이며,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반도의 운명이 여전히 강대국의 이해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각인케 하는 가설이다.

 

분단의 영구화 빅딜이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은 미국도 국익 우선을 추구하며 국익을 위해서는 동맹국의 가장 중요한 국익과도 다른 방향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이러한 한국배제의 가설이 현실화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국가들의 행동동기인 국익에 초점을 맞추어 해답을 모색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미ㆍ중이 한반도에 관한 논의과정에 한국을 배제하지 않고 참여시키는 것이 자국 국익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도록 우리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ㆍ중은 국익을 위해서는 우리를 배제하고 그들만의 비밀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며 우리의 참여가 법적(양자협정 또는 국제법) 또는 윤리적(동맹국의 도리) 측면에서 당위적으로 요구될 수 있는 그러한 사안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은 1904년 미ㆍ일간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관한 가쓰라ㆍ테프트 비밀합의가 이루어졌던 100여 년 전의 그 당시와 다를 바가 없다.

 

코리아 패싱에 대해 우리가 분노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강대국들이 지역과 세계질서를 주도해나가는 국제사회의 구조적 한 단면임을 냉정히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그들의 논의에 우리를 초대하느냐 여부는 우리의 참여가 그들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이 관건일 것이다. 강대국들이 당사자인 우리를 배제하고 한반도 문제를 협의하는 것이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도록 우리가 강대국과의 정치, 경제적 등 이해관계를 형성해가는 것만이 ‘코리아 패싱’을 방지하는 우리의 덕목일 것으로 생각된다.

 

신길수 前 주그리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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