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얼렁뚱땅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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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장을 다녀온 딸은 나에게 노트나 펜, 약품 등을 선물한다. 써볼 때마다 품질도 품질이지만 포장재가 잘 분리되는 것에 감탄하면서 왜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못 만드나 한탄스럽다.

 

비단 물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게 문제다. 교량 위를 운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음새 부분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곳은 거의 없다. 새롭게 포장한 까만 도로가 몇 개월도 못 가 회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의 토목기술은 마술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쉽게 고칠 수 있는 일들인데 소관이 불분명한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안타깝다.

 

공무원교육원장으로 근무할 때 건물을 새로 짓게 됐다. 강의실 단상을 만드는데 작업자들이 단상 안의 작업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덮는 것을 보고 다시 뜯어 깨끗이 청소하라고 말하자 안 보이는 곳인데 유난 떤다는 말을 들었다.

 

일본말에 ‘시아게(仕上げ)’란 말이 있다. 마무리, 끝손질, 뒷마감이란 뜻인데 오늘날 세계 제일의 제조업 강국 일본을 만든 단어다. 사실 시아게는 눈에 띄지 않기에 인기가 없다. 하지만 시아게가 없이는 선진국의 마지막 관문을 넘기 힘들다. 다들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사소하다는 논리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아닌지….

 

언제부턴가 우리는 거대 담론에 휩싸여 정작 삶의 편의성에 손 놓고 있지 않았나 싶다. 우국열사는 많아도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지자체장은 국회의원이나 대권을 향한 디딤돌 자리가 아니라, 공원의 농구 골대망이 찢어졌을 때 빨리 보수해야 하는 사람이다.

 

시장으로 있을 때 시민 한 사람이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회사원인데 하루 일과에서 짜증나는 일들을 열거하며 국가가 할 일인지 지자체가 할 일인지 말해달라고 했다. 대강 기억나는 것은 잘못된 신호체계나 도로구조로 인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교통정체, 누더기 도로, 개념 없이 설치한 과속방지턱, 무단 투기 쓰레기, 그늘 없는 공원, 각종 소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작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제갈량은 승상으로 있으면서 곤장 몇 대 치는 일까지 관장했다고 한다. 밑에서 할 일까지 오지랖 넓게 개입한데 불만이 높자 “선주(유비)께서 나라를 간곡히 부탁하신 지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최고 지도자도 이런데 우리의 작은 삶을 책임진 당사자들의 세심하고 꼼꼼한 손길이 아쉽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대장부’니 ‘그릇이 크다’느니 하며 소위 큰일을 하는 사람은 좀스럽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희한한 문화가 있다.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물 뿌리고 빗질하는 것도 모르면서 천리(天理)를 이야기 한다”면서 공리공담을 경계했다.

 

외국에 갈 때면 도로 옆의 경계석을 유심히 보곤 한다. 경계석이 똑바르고 높낮이가 일정하며 이음매 부분이 깔끔할 경우 선진국이 틀림없다. 노약자를 위한 육교 엘리베이터 안이 지저분한 나라는 희망이 없다.

 

안 보이는 곳일수록 더 꼼꼼히 챙기는 세심함과 배려가 아쉽다. 맘만 먹으면 정말 잘할 수 있는 국민인데, 언제쯤 이런 일들이 사라져 ‘얼렁뚱땅 대한민국’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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