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연습생 꿈 갉아먹는 노예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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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대 아이돌 그룹이었던 ‘한스밴드’가 계약기간이 너무 길어서 노예계약이라는 파문이 있었는데, 당시 이와 처지가 비슷했던 다수의 예술인들은 소송을 통해 계약을 해지하였다. 이후 정부는 예술인 불공정 계약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예술인 계약기간을 7년(공정위 표준 약관 제10062호, 제10063호)으로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의 대다수 연예 기획사들은 공정위의 표준전속 계약서를 따르고 있다.

 

대중문화예술산업에 종사하는 가수나 연기자 같은 예술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질 있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반복한다. 개인적으로 오랜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가까스로 연예 기획사에 입문하거나, 특별한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운이 좋아서 단기간에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후자의 사례는 드물지만 전자의 사례는 데뷔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

 

흔히 말하는 연습생 기간부터 고된 훈련을 반복하고 수많은 평가를 통해 살아남는 연습생만 데뷔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연습생은 연예 기획사와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연습생이 계약을 해지할 경우 과도한 위약금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초 공정위는 연예 기획사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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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나 연기자로 데뷔하게 되는 연습생은 공정위의 표준전속 계약서 권고사항인 7년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만약 연습생 기간이 3년이 소요됐다면 소속된 연예 기획사에서 10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결국 10년 이상의 노예계약이라는 문제를 시작으로 정부가 제시한 표준전속 계약서는 7년을 권고하고 있지만, 연습생 계약 때문에 과거에 비해 크게 변한 것은 없는 셈이다.

한 명의 가수나 배우가 한 곳의 연예 기획사에서 10대 혹은 20대의 모든 청춘을 바친다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모험과도 같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 시절이 모험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이 더 지배적일 것이다. 사실 모든 연습생들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극히 소수만 살아남는 예술시장에서, 이를 악용하는 어른들의 욕심이 예비 예술인들의 꿈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예술인을 오랜 기간 경험해 본 필자의 견해로는 연습생 계약기간 2년, 표준전속 계약기간 5년이 그나마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이처럼 정부는 많은 예술인들의 조언을 수렴하여 다시 한 번 연습생 계약서와 표준전속 계약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경호 네오알앤에스 기업부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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