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추석을 간절히 기다려온 이는 아마도 농부일 것이다. 농부는 한여름 땀 흘려 농사를 짓고 9~10월 즈음이 되면 농사가 마무리돼 맘 놓고 편히 쉴 수 있기에 추석은 한 해의 마침표와도 같다. 그래서 네 일 내 일 할 것 없이 도와준 이웃이 고마워 수확한 곡식을 나눠 먹는다. 아직 농촌은 여전히 서로서로 돕는 끈끈한 공동체의식이 살아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엔 지금처럼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적었다. 잘 아는 이웃집에 아이를 맡겨두고 일을 나갔고, 장을 보러 나갈 때는 문조차 잠그지 않고 나가곤 했다. 그 당시엔 옆집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알았고 이웃들 경조사도 함께 했다. 못된 짓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예의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하면 어른들 꾸중이 있었고 나중에 들키기라도 하면 온 동네에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지금은 급격한 산업화를 거쳐 개인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층간소음이라든지 주차문제라든지 이웃과 정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소리 높여 다투거나 법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고 삭막해졌다.
그렇지만 이 같은 이웃간의 다툼을 개인들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욱 커 보인다. 경기불황은 좀처럼 끝나지 않아 먹고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졌다. 이웃과 함께 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경제수준에 따른 지역간 인구이동은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좋은 주거, 교육, 문화, 환경을 찾아 기존 도심을 벗어나 신도심으로 가고 빠져나간 구도심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공동체의 모습은 이전과 다르게 쉽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그동안 우리 적십자에서는 서로 믿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행정동별로 봉사회를 구성해 동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위기가정이 빠른 시일 내에 정상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희망풍차’ 사업을 2012년도부터 지속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함께 걷자 인천 페스타’라든가 ‘G타워 희망오르기 대회’, ‘선한페스티벌’ 등 청소년들이 함께 나누는 장으로 나와 위기에 놓인 이웃을 도움으로써 공동체의식 함양을 위해 세대, 계층간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호는 한데 뭉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저마다 소리를 내다보니 공허한 외침이 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인천 지역사회 최대의 화두는 초등생 살인사건이었다. 타락한 청소년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바로잡아줄 어른이 없는 이 사회가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아쉽기도 하다. 그 이후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을 거치면서 처벌에 대한 제도적 접근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법률적 강화도 필요하고 사회적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밝고 건전한 인성을 가진 청소년을 키우는 일이다. 이젠 함께 돌보고 함께 가꾸는 공동체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함께 나서야 할 때다.
황규철 대한적십자사 인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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