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남한산성에 갇힌 긴장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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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추석 연휴 동안 나는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감정은 나와 내 나라가 처한 현실에 대한 처량함이나 무기력감 같은 것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스산하기만 했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의 감정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는 소설의 여는말에서 “밖으로 싸우기 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다”고 했고, “세계악에 짓밟히는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고도 했다. 정말 그랬다. 병자호란 당시 상황과 지금의 북한 핵위기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오버랩하면 그런 감정들이 더욱 증폭되며 의문을 낳았다.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느끼는 감정의 정도가 이러할진대 국민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소설가 한강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의 일단을 그려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북핵위기에 처한 한국인들이 평상시처럼 생활하고 있어 안보 무관심인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한 변론의 글이다. 그녀는 한국인이 오히려 ‘수십년간 축적된 긴장과 공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놀라운 자제력과 평정심으로 다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긴장과 공포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가인데 그 근원의 역사적 사건을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병자호란으로부터 10년 전인 정묘년에도 인조는 후금의 침략을 받고 강화도로 피신했다. 이윽고 적장 앞에 나아가 형제의 나라가 되기를 맹약하는 굴욕을 당했다. 병자호란 때도 후금은 산성을 제쳐두고 그대로 대로를 내달려 또다시 단 며칠 만에 한강까지 쳐들어왔다. 인조는 결국 군신관계를 맺는 항복식을 하고야 목숨을 부지했다.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다가 똑같은 수에 나라를 내준 것이다.

 

굴욕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도 반복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의 동요도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고 안심시켜 놓고 전쟁이 터진 다음날 새벽을 틈타 대구까지 피신했다. 그 다음날에는 지금의 북한군의 남하를 막을 요량으로 지금의 한강대교를 폭파해 600~700명의 국민이 희생됐다. 영화에서 김상헌이 송파나루를 건넌 후 여진족의 도강길을 알리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늙은 뱃사공을 베어 냈던 것처럼.

 

한강이 말한 한국인의 긴장과 공포는 수십년간 형성된 것이 아니다. 수백년간 지속돼 온 것이다. 그 공포감의 뿌리도 외부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모진 권력자들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와 백성의 생명과 안전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사적 이익과 일신의 영달만 추구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부패한 권력층들 말이다. 국민들은 이들에게 나와 가족의 안전과 생명을 맡겨도 되는지 긴장되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유능하고 선한 권력만이 평화적 방법으로만 해소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햇볕정책의 성과를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전쟁 위협 속에서도 생필품 사재기 하나 없는 국민들의 절제력과 통찰력의 근원이 무엇일까. 일부 외국인이 보는 것처럼 그것은 안보 불감증이 전혀 아니다.

햇볕정책을 통한 200만명 이상의 금강산 관광, 5만명 이상의 남북노동자가 교류하는 개성공단 등 평화적 교류를 통해 상대를 알게 되면서 북한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느끼는 긴장과 공포가 줄었기 때문이다. 북핵위기 속에서도 남북화해와 평화적 교류를 기조로 한 제2의 햇볕정책이 추진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근서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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