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설경마 ‘판도라’ 개발 프로그래머
큰돈 벌었지만… 조폭 협박에 고달픈 삶
“범죄와 악연 끊고 싶다”… 때늦은 후회
“조직폭력배와의 인연을 끊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1조 2천억 원 규모의 판돈이 오갔던 불법 사설 경마 프로그램 ‘판도라’ 운영진이 경찰에 붙잡힌 가운데(본보 10월27일자 7면) 판도라를 개발한 프로그래머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판도라를 개발한 A씨(44)는 범죄 조직을 만나기 전까지는 ‘게임을 좋아하는 프로그래머’였다.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한 A씨는 공학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 취직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A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국내 최고 인기 게임인 ‘리니지’였다.
자신이 개발한 ‘리니지 오토 실행 프로그램’이 리니지 유저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A씨는 회사까지 차려 수천만 원의 월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리니지 측에서 A씨의 프로그램을 인지,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유저들을 고소ㆍ고발하게 되면서 A씨는 잠적하고 만다.
이후 A씨를 찾은 것은 범죄조직이었다. 리니지 자동 실행 프로그램이 워낙 유명해 불법 사설 도박을 운영하는 조직들이 앞다퉈 A씨를 영입하려 한 것이다. 결국 A씨는 조직폭력배와 손잡고 ‘판도라’라는 사설 경마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A씨는 판도라가 처음 세상에 공개된 후 매주 700만 원가량, 연간 3억 원이 넘는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A씨는 큰돈을 벌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의 오류가 생길 시 바로 복구해줘야 해 온종일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인과 아이들은 수원에서 십수 억 원에 달하는 최고급 아파트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정작 A씨는 가족들을 만날 시간조차 빠듯했다.
더욱이 프로그램 오류가 심하면 조폭들의 협박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돈을 정산받지도 못했다. 이런 생활에 A씨는 조금씩 지쳐만 갔다. 결국 경찰에게 붙잡힌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되면서 A씨는 ‘다시는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싶지 않다. 조폭과 인연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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