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고마운 비서여, 안녕

조상윤 국제사이버대학교 교수
조상윤 국제사이버대학교 교수
현대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 함께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침부터 공중파 3사의 드라마를 섭렵하고, 낮에는 케이블 방송, 저녁엔 다시 방송 3사의 드라마로 마무리하는 어머니는 TV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친숙한 물건이겠지만,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스마트폰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임을 얼마 전 깨닫게 되었다.

 

스마트하게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전화기는 은행을 가서 기다리지 않아도 업무를 처리해주고, 무겁고 비싼 카메라를 힘들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화질 좋은 작품을 전문가처럼 찍어내며, 비싼 통화료를 내지 않고서도 실시간으로 누구든 안부를 물을 수 있으며, 모르는 길도 척척, 음식을 만들다가도, 급한 정보가 필요할 때도 전화기만으로 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세상.

 

이렇게 감정 소비 없이 말 잘 듣는 비서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해야 할 일정들을 입력만 해주면 알람으로 확인해주고, 골치 아프게 외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제공해주는 전화기는 최고의 비서로 내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자명하다.

 

이 최고의 수행 비서를 며칠 전 분실했다. 용인시 테니스대회가 있어 참가하게 되었는데, 산 위에 코트가 있어 주차장이 부족하니 산 아래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걸어 도착해 달라는 주최 측의 요구대로 도착하여보니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10분이 걸리는 산길을 다시 왕복하며 찾기를 두 차례. 경기시간이 되어 찾기를 포기하고 시합에 임하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서브를 넣기 위해 공을 올리고 치려는 찰나 “이틀 뒤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누구더라?”, “전화번호도 따로 없는데 어쩌지?”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도 경기는 5:5 타이브레이크 박빙의 경기인데 생각은 멈추질 않는다. 오랫동안 하지 않던 ‘알아차림’ 명상을 했다.

 

‘알아차림’ 명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조상윤 

국제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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