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반도를 위한 준비 ‘지방분권’] <2> 독일 통일의 핵심 ‘연방제’

獨 통일 이끈 지자체 간 교류·협력… 통합 후 갈등 최소화

우리보다 앞서 동서독 통일을 이뤄낸 독일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우리나라와 독일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지니고 있는 만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5년간 분단됐던 나라가 성공적인 통일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지방분권을 토대로 한 연방제적 자치 구조는 동서독의 실질적 통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동서독 도시 간 교류협력 사례를 살펴보면 통일 과정에 지역의 역할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독일이 지방분권적 국가 구조를 통해 서독의 지방자치 이념이 동독으로 자연스럽게 유입, 동독을 아래로부터 민주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필연적으로 각 지역의 독자적인 역할과 참여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방분권 국가 구조를 기반으로 한 지역 간 교류가 통일 전후 사회 안정화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 베를린에 있는 연방상원 청사. 연방상원은 독일 16개 주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상원의원들은 주정부의 이해관계를 연방에 대변한다.
▲ 베를린에 있는 연방상원 청사. 연방상원은 독일 16개 주정부를 대표하는 기관이다. 상원의원들은 주정부의 이해관계를 연방에 대변한다.

■ 독일 통일의 밑거름 된 동서독 교류·협력

통일 전 서독은 전통적인 분권주의에 입각해 11개의 주(州)로 구성돼 있었다. 각 주는 독자적 선거제도에 근거해 의회를 구성했고 주총리를 선출했다. 지방자치 형태 역시 각 주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따라 서로 차이가 있었다. 반면 동독은 공산당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였다. 직접 선출 과정을 통해 조직된 인민회의나 정부 공직자까지도 당의 노선과 정책을 단순히 집행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처럼 통일 전 동독과 서독은 서로 완전히 다른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두 국가의 가치와 구조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던 데는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가 큰 역할을 했다. 그 예가 기초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 간의 교류와 협력이었다.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협력 사례에서도 도시 간 자매결연은 통일 전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도시 간 자매결연은 1985년 11월 샤를란트 주지사 라폰테인과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의 회동을 기점으로 물꼬를 트게 된다.

 

이때부터 동서독 주민들의 접촉이 잦아졌고 통일 즈음해서는 이 통로를 통해 물자 제공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후 1986년 4월26일 동서독 최초의 지방자치단체 간 자매결연 조약이 체결됐으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말까지 총 62개 도시 간 자매결연이 성사됐다. 당시 자매결연을 통해 이뤄진 교류ㆍ협력사업은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다양했다.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자매결연 사업으로는 전문가 교류가 있었으며 이외에도 체육ㆍ청소년ㆍ평화ㆍ문화ㆍ신문교류 등이 이뤄지기도 했다. 또한 재정 등 여러 분야의 불균형도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가장 낮은 단위의 지자체별로 해결했다.

 

▲ 독일 베를린 소재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에는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모은 자료들이 전시돼 통일 독일의 역사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외부에는 원형 그대로의 베를린 장벽이 보존돼 있다.
▲ 독일 베를린 소재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에는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모은 자료들이 전시돼 통일 독일의 역사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외부에는 원형 그대로의 베를린 장벽이 보존돼 있다.

■ 통일 후 동ㆍ서독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지원

통일 이전부터 진행된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협력은 통일 이후 더욱 활발히 추진됐다.

 

동독의 경우 통일 과정에서 서독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서독 연방에 가입하는 방식의 통일을 선택했다.

 

특히 다수의 동독 주민들은 통일 이후 신설할 주(州)와 관련해 역사적, 문화적으로 이미 형성돼 있던 기존 5개 주의 부활을 주장, 결국 동독인민회의를 거쳐 과거 5개 주가 부활됐다. 통일 후 구동독의 기존 주들은 5개의 새로운 주로 재구성돼 서독 연방에 가입됐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행정조직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서독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구동독 신설 주의 행정조직 구성에 적극 협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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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통일 전부터 시작된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간의 자매결연은 신설 주의 행정조직이 이른 시일 내에 정비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간 자매결연은 통일 이후 급속히 확대돼 1993년 초에는 약 2천 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당시 동독 지자체에 대한 서독 지자체의 지원은 물적 지원부터 행정자문 및 상담, 전문인력 파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졌다. 초기에는 사무실 설비, 복사기 등과 같은 물적 지원이 가장 많았으나 점차 상담, 전문 인력 파견으로 지원 분야가 다양화 됐다. 전문 인력 파견의 경우 초기에는 단순한 출장 형태였지만 점차 동독 지역에 상주해 행정 조직 정비를 지원하는 전근형태로 바뀌었다.

 

1991년 약 1만여 명이 파견된 이래로 행정조직의 통합이 어느 정도 완료된 1995년 12월 기준, 약 3만5천여 명이 동독 지역에 파견됐으며 그 인적 구성은 연방정부에서 파견된 인원이 1만6천500명, 지자체에서 파견된 인원이 1만8천500명으로 지자체에서 파견된 인원이 더 많았다.

특히 통일 후 첫해 동안 약 20% 정도의 서독 지자체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동독으로 파견됐고 그 덕분에 동독 지자체의 행정 개혁이 효과적으로 이뤄 질 수 있었다.

 

[인터뷰] 베를린 독일연방 구 사회주의통일당 독재청산재단 옌스 휘트만 박사

 

▲ 베를린 독일연방 구 사회주의통일당 독재청산재단 옌스 휘트만 박사
▲ 베를린 독일연방 구 사회주의통일당 독재청산재단 옌스 휘트만 박사

독일 전문가들은 지방정부가 통일 이후 사회안정화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일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동서독은 자매결연 등을 통한 연방 간 교류협력으로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이해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독재청산재단에 대해 소개해 달라.

20세기 독일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간 파시스트 나치 독재역사와 더불어 1949년부터 1989년에 걸친 동독 공산주의 독재역사를 경험했다. 1989년 독일 연방 의회에 의해 설립된 이 재단은 이러한 독재 역사에 대한 평가 작업과 함께 독일 통일과 연관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과 독일의 분단 상황은 많이 다르면서도 굉장히 비슷한 측면이 있다. 독일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했다면 한반도는 독재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적 정서와 이념 등은 독일과 한국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 분단된 지 40여 년이 지나 프리드리히 혁명 등 시민들의 움직임이 폭발하면서 갑자기 통일이 다가왔다.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이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 ‘통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지방분권 개헌 추진에 대해.

독일이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이했듯 한국 역시 예기치 못하게 통일 또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남한에서 지방분권적 국가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로 보자면 실제 연방주의 국가 구조가 통일 과정은 물론 통일 이후에도 동서독의 실질적인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큰 틀에서의 통일은 중앙연방정부 차원의 추진력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통일 전후 과정에서 연방제는 문화와 가치 등 동서독의 실질적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정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연방제적 국가 구조가 사회통합 등에 미친 영향.

연방제적 국가 구조는 통일 이후 사회통합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서독의 연방구조는 70-80년대부터 두 사회가 서로 접근하는데 굉장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독의 지방자치정부와 동독의 지자체 간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를 해온 것이 두 사회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하나의 토대가 됐다. 이러한 지방자치단체 간 자매결연은 서방만 바라보던 서독주민들이 다시금 동쪽에도 우리의 일부가 있다는 자의식을 갖게 했다.

 

-통일 과정에서 지방분권을 토대로 한 지역 교류가 활발히 진행됐는데

동서독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는 통일 이전부터 시작됐지만 통일 이후 그 파급력이 더 극대화됐다. 실제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지역에 행정시스템이 전혀 없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때 지방정부가 큰 역할을 했다. 동ㆍ서독의 지방정부가 서로 교류하며 행정시스템을 구축해 나간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공무원을 파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통일 후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남북한 통일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 도시 간 자매결연, 지역축구단 간 교류 등 풀뿌리교류가 당장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해 보일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부분이다. 

 

자연환경보호 지역 간 교류를 추진한다든지 관광프로그램 등을 통해 상호 인간관게를 형성하도록 유도한다면 남북 간 선입견을 타파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박준상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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