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반도를 위한 준비 ‘지방분권’] 4. 한국 지방자치제의 현주소

지방자치 아직도 걸음마 수준 통일 대비해 국가구조 개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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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뀫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 위치한 파울 교회(Paulskirche). 독일 최초 자유 선거로 구성된 의회인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회의 장소로 활용돼 독일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은 더 이상 교회로 사용되지는 않고 있으며 대신 다양한 축제와 행사 장소로 활용된다. 대표적으로 매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평화상 수여 장소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도한 법적ㆍ재정적 권한과 기능이 중앙에 집중돼 있다.

전체 행ㆍ재정 권한의 80% 이상이 중앙정부에 편중돼 있을 뿐만 아니라 조례 등 자치입법권도 크게 제약받으면서 ‘2할 자치’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일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국가 체제에서 남북통일이 이뤄질 경우 모든 관리와 책임을 중앙정부가 고스란히 떠안게 돼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남한이 먼저 지방분권적 국가 구조를 만들어 지역의 문제를 지방정부 스스로가 책임지고 해결해나가는 ‘자치 경험’을 미리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한국의 지방자치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출범 이후 중앙권한과 세원의 지방이양 미흡 등으로 인해 중앙집권적 국가행정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중앙과 지방의 전체 사무 가운데 중앙정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사무가 약 85%에 달하고 지방에서 담당하고 있는 순수 지방사무는 약 15%에 불과한 상황임을 통해서도 파악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세 대(對) 지방세의 비중 역시 80:20에 머물고 있고 중앙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비중도 70:30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 중앙집권적 국가행정체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경기연구원이 분석한 ‘중앙정부와 광역정부(시ㆍ도)간 사무배분 현황’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파울 교회 내부 전경. 2층 대강당에는 독일 16개 연방주를 상징하는 주기가 게양돼 있다.
파울 교회 내부 전경. 2층 대강당에는 독일 16개 연방주를 상징하는 주기가 게양돼 있다.
우선 국가사무와 대별되는 지방사무에 대한 용어상의 혼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기능배분에 있어 대부분 국가사무와 지방사무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경우 지방사무는 시ㆍ도 및 시ㆍ군ㆍ구 중 어느 곳의 사무인지 또는 단체위임사무인지 혹은 자치단체 고유사무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광역정부의 핵심적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교육 및 경찰기능이 배분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즉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정착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주요 권한들이 여전히 광역정부로 이관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앙정부의 경우 교육사무, 경찰사무 등 핵심적인 기능보다는 사소한 단위사무 이양을 하고 있으며 지방이양위원회에서 결정돼 지방정부로 이양된 사무마저도 기능 중심이 아닌 소단위 사무 중심으로 이관된 것을 볼 수 있다.

 

아울러 광역정부에 위임 혹은 이양된 사무에 대한 중앙정부의 경비부담, 인력 및 기술지원 등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광역정부에 중앙정부 사무가 위임됐다면 당연히 경비부담 및 인력과 기술지원의 주체는 중앙정부여야 한다. 그러나 경비 측면에서 보면 광역정부가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의 경비를 내고 있어 재정 운영에 부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법 및 지방재정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기관위임사무에 대한 경비부담은 일부에 한정되는 관행이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역정부로의 완전한 이양보다는 감독권을 단순 유보한 위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중앙정부가 감독권을 유보함으로써 지방의 책임성을 약화시키는 한편 중앙이 강력한 지도감독을 행할 수 있는 기반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광역정부에는 아직도 중앙정부의 지도감독범위가 광범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지난 2003년 중앙정부가 도에 대해 법령상 관여하는 사무를 약 305개로 제시한 바 있다.(행정자치부 조사)

 

독일의 5대 경제연구소 중 한 곳인 할레경제연구소. 이곳에선 통독 이후 동독의 재건 비용, 한반도 통일 비용 등을 연구하고 있다.
독일의 5대 경제연구소 중 한 곳인 할레경제연구소. 이곳에선 통독 이후 동독의 재건 비용, 한반도 통일 비용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방보다는 중앙의 의사를 반영한 기능 이양이 이뤄져 왔다는 문제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이양을 원하는 기능보다는 중앙에서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해 주기를 원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이양이 추진돼 왔다는 것이다.

 

조성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중앙-지방 간 사무배분 현황만 보더라도 상당 부분의 권한이 중앙에 편중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과부하에 걸린 국가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능을 광역정부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가가 수행하고 있는 문화, 경찰, 교육, 교통, 경제정책 등을 광역정부로 이양해 지역특색에 맞는 지역경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지방분권 개헌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사무지역 간의 정책경쟁과 조세경쟁이 가능하도록 중앙-지방 간 기능이 재배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통일에 대비한 지방행정체제 개편 구상

국내 전문가들은 최근 지방분권 개헌 움직임과 관련해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점을 감안, 통일을 대비한 국가 구조의 구상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이 60년이 넘도록 매우 이질적인 정치체제 하에서 기본적인 생활문제의 해결방식을 달리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나의 획일적인 정치질서로는 통일의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지방자치의 특색과 다양성이 한반도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박 시장은 “지방분권은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길로, 지방분권이 북한 지역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정치 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일을 위해서는 국가의 동질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문제에 관한 정치적인 결정을 자기 책임하에 할 수 있는 정책결정권과 정치적 결과에 대한 위험을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는 국가구조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국가 구조는 연방주의에서 그 모델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지방분권 선포식’이 열린 경기도의회에서 강득구 연정부지사,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 김윤식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장, 이환설 경기도 시군의회의장협의회장, 염태영 수원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기일보 DB
지난달 23일 ‘경기도 지방분권 선포식’이 열린 경기도의회에서 강득구 연정부지사, 정기열 경기도의회 의장, 김윤식 경기도 시장군수협의회장, 이환설 경기도 시군의회의장협의회장, 염태영 수원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기일보 DB
연구원이 제시한 ‘통일에 대비한 지방행정체제 개편’ 자료를 보면 통일이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인 상황변화에 따라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통일을 대비한 국가구조를 미리 구상하고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정착시켜야 한다는 분석이다.

 

준연방주의적 국가구조의 실현시기에 대해서는 먼저 통일헌법 수준에서 연방주의적인 국가구조를 마련해 놓고 통일이 된 이후에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지만 통일 후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근본적인 정치개혁에 해당하는 새로운 국가구조를 형성해 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에 남한만이라도 먼저 통일에 대비한 국가구조를 담은 헌법을 실시하고 통일 이후 통일헌법에 북한지역을 가입시키도록 하는 방식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의 경우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 통일하는 형식이 아니라 독일연방공화국에 동독의 주들이 가입하는 형식을 취했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통합과정에서도 서독의 주정부와 동독의 주정부가 파트너쉽을 통해 동독사회의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고 또한 동독지역의 주정부에 의해서 파트너주인 서독의 주정부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조성호 연구위원은 “통일 이전에 남한만이라도 통일 후에 실시할 수 있는 준연방주의적인 헌법모형을 먼저 도입하고 안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준연방주의적인 국가구조를 도입해 통일의 충격을 흡수하고 북한지역에 대한 특성을 살리면서 실질적인 통합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이어 “광역시ㆍ도 통합 등을 통해 광역정부의 권한을 확대, 준영방제 국가 구조의 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광역정부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무한경쟁시대는 물론 향후 남북통일시대에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의회와 한국지방자치법학회 주관으로 지난 3월14일 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지방분권형 헌법개정 학술대회'에서 토론자들이 2017년도 도의회의 자치입법 역량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경기일보 DB
경기도의회와 한국지방자치법학회 주관으로 지난 3월14일 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지방분권형 헌법개정 학술대회'에서 토론자들이 2017년도 도의회의 자치입법 역량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경기일보 DB

박준상기자

사진=김시범·박준상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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