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강화는 시대적 요청… 통일시대 대비 포석”
남한에서조차 온전히 정착되지 못한 제도를 통일 이후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남한에서 먼저 지방분권 국가 체제를 구축해 향후 통일 한반도를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지방분권 강화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차 지방분권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방분권 선포식 및 관련 토론회를 잇달아 개최하는 등 지방분권형 개헌이 가시화하고 있다. ‘한반도형 지방분권’ 구축을 위한 통일 역량 강화 방안을 모색해 본다.
■ 본격화된 ‘지방분권 개헌’ 움직임
“자치와 분권이야말로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이다. 대한민국의 새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와 국회 시정연설 등 공식행사에서 잇달아 강조한 말이다.
법제처는 지난 10일 자치입법권 강화와 자치행정권 강화 등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20개 대통령령 일괄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번 개정은 현행 법령 중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과 자치행정권을 저해하는 제도를 찾아 수정하는 작업이다.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지방분권과 자치 강화’를 위해 개헌 전 법령 개정으로 지방분권을 미리 확대해 나가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연내 공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외숙 법제처장은 “각 지자체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반영해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하는 것은 지방분권 시대의 든든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지방분권 개헌 관련 각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경기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경기도 시장ㆍ군수 참여 지방분권 순회토론회’를 비롯, 각 지자체가 ‘지방분권형 개헌방안 토론회’, ‘재정분권 토론회’ 등을 연이어 개최하며 지방분권 개헌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한편 대표적 지방분권 국가인 독일의 경우 헌법인 기본법을 통해 광범위하게 지방분권을 보장하고 있다. 기본법 제20조에는 ‘독일연방국가는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연방국가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기본법 제28조는 각 지방자치정부가 갖는 권한을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같은 조항 2항에는 ‘게마인데(지방자치단체)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그 지역사회의 모든 사무를 자신의 책임으로 규율할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게마인데들의 행정연합체도 그 법률상 과제의 범위 내에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자치행정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제30조는 ‘국가권한의 행사 및 국가과제의 수행은 기본법에서 다른 규정을 두지 않는 한 주의 관장사항이다’라고 규정해 주정부의 독립적 권한을 보장했다. 이 밖에도 기본법의 몇 개 조항에 걸쳐 연방과 주의 세수입의 배분을 비롯, 경비부담, 세금배분 등을 구체적으로 분류해 규정하고 있다.
■ 지방자치단체의 통일 역량 강화를 위한 법제 정비 방안
지방분권 개헌 움직임이 본격화함에 따라 전문가들은 향후 남북통일시대를 감안, 각 지방자치단체의 통일 역량 강화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책 자료 ‘통일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보면 통일에 대비한 지방자치단체 역량 강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통일 사무의 주체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헌법 전문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 선언과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 제4조의 평화통일의무 조항 등에 비추어볼 때 평화적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평화통일의무(책무)는 헌법상 의무로서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므로 지방자치단체 역시 그러한 의무의 수범자가 된다. 따라서 통일준비는 국가 이른바 중앙정부의 사무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이자 책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통일교육지원법 제6조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조항을 두고 있을 뿐이다.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2장에서 남북관계발전을 ‘정부’의 책무라고만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제8조 제2항에서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단체 등의 교류협력을 확대ㆍ발전시켜 남한과 북한 간 상호이해를 도모하고 민족의 전통문화 창달을 위한 시책을 수립ㆍ시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를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라고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북교류협력에 있어 지자체의 특수한 지위를 반영한 특례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적,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지방정부라는 지방자치 단체의 특성을 고려해 남북협력승인 절차를 보다 쉽게 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 진행 및 이에 필요한 관련된 대북정보제공 등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국가의 협조의무를 규정하는 등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와 지자체 간 협의체의 사전 정비도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향후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과 관련해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을 예방하고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간 체계적인 남북교류 협력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행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4조, 제5조의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와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14조의 ‘남북관계발전위원회’ 구성에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1항 각호에 의해 설립된 협의체에서 추천한 자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또는 부단체장)을 포함시킬 수 있도록 개정하거나 이와 별도로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의체에 관한 규정을 신설해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현재 임의기구인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실무협의회’의 법정기구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통합적 지원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 관련 정보는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대북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통일부 등에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 협력사업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지원센터를 설립해 정보제공 등 지원업무를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가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서 남북교류협력 사무 등 통일 사무를 지방자치단체에 단순 이양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업의 기금출연을 확대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위한 기금을 기부했을 경우 세제감면 혜택을 부여하는 방법 등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에 관한 지방 재정확보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남북교류협력사업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의무에 관한 일반적인 근거 규정을 신설하는 것도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박준상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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