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지방자치 하자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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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답답하면 그랬을까? 이해는 간다.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낸 염태영 수원시장 말이다. 청원 대상은 자신의 임기 두 번이 지나가도 해결되지 않는 청명센트레빌 아파트를 둘러싼 용인시와의 경계조정 문제다. 청명센트레빌 아파트는 수원이 아닌 용인에 있다. 아파트가 용인시 영덕동, 수원시 원천동과 영통동에 걸친 ‘U자형’ 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생활권은 수원시지만 행정구역은 용인시다.

 

가장 큰 쟁점은 초등학생들의 통학문제다. 청명센트레빌과 주변 빌라에 사는 초등학생들은 246m 거리에 있는 수원 황곡초등학교를 두고,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 1.19㎞ 떨어진 용인 흥덕초등학교에 다녀야 한다. 이 때문에 2012년 입주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그동안 수원시장과 용인시장이 토지를 맞바꾸는 ‘빅딜’을 추진했지만, 매번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불발로 끝났다. 결국,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염태영 시장은 지난해 11월20일 불합리한 행정경계를 조정해달라며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렸고, 청와대가 답변해 주기로 한 1달 내 20만 명 동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15년에 수원시와 용인시가 거의 합의에 이르렀던 적이 있었다. 경기도의 중재하에 부시장들 간에 협의안이 만들어졌었다. 그러나 결정권을 가진 시장과 시의회 등 선출직 공무원으로 넘어가면서 협의안이 무산되고 말았다. 경기도의 중재안에 대해 수원시는 동의했지만 용인시가 거부했던 것이다. 지난해 협의 과정에서도 수원시는 그간 도의 중재와 양 지자체 간 협의를 거쳐 만들어진 개선안을 용인시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용인시는 세수확보를 이유로 거절했다. 마찬가지로 수원시도 용인시가 제안한 협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저간의 복잡한 역사를 생각하면, 수원시장이 자치단체장이면서도 일반국민을 위해 열어놓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한 행동이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경기도의 중재안을 거부한 용인시장과 시의회가 야속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다. 염 시장이 그동안 지방자치, 지방분권을 앞장서서 외치며 더 많은 권한을 지방으로 내려달라고 주장한 중심인물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집권 여당의 전국 기초단체장 협의회장이자 전국자치분권 민주지도자회의 지방분권개헌 특위위원장 아니던가?

 

더 큰 지방자치, 더 많은 지방분권을 외치면서 막상 자치단체 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청와대라고 하는 중앙집권 권력에 기대는 것은 모순이다. 물론 경기도의 중재안에 동의해 주지 않은 용인시에 원초적 잘못이 있지만, 자치단체의 체면이나 세수 감소보다 시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면 용인시가 깜짝 놀랄만한 통 큰 제안을 하든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용인시 제안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참모습 아니었을까? 수원시가 경기도의 수부도시로서 앞으로 더 큰 자치를 수행할 역량과 어른스러움이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지방자치를 확대하면 할수록 자치단체 간에는 더 많은 분쟁이 있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다시 청와대와 같은 중앙권력에 기댄다면 그게 진정한 지방자치라고 할 수 있을까? 지방분권을 확대하자면서 안되면 중앙권력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없다. 서로 상대방이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함으로써 자치단체가 중앙의 개입 없이도 상생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 주여야 한다. 수원시장과 용인시장의 통 큰 자치역량을 보고 싶다.

 

박수영 아주대 초빙교수·전 경기도 행정1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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