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 추정하는 대한민국 역술시장 규모는 3∼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재미 삼아 보는 오천 원짜리 점부터 재벌들이 보는 수천 만원에 달하는 고수급 점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자칭 고수가 전하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은 다음과 같다. 과거는 제법 맞추는데 앞날은 적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한자 해득(解得) 능력이 없어 남이 번역한 책에만 의존하고, 제대로 된 스승에게 공부하지 않아 수준 이하다. 품성과 인격이 함량 미달이고 돈만 밝힌다.
자칭 고수가 30년 영업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 세상은 자기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며, 인생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위에서 함께 굴러가는 존재이기에 사주팔자를 벗어나기 힘들단다. 그러나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결과는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아름답고 귀하다는 것이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학자인 유향(劉向)은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아는 자는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운명의 이치는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가면 반드시 밤이 온다는 것이다.
작년 대선 전 각 역술가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SNS에 현란한 설명과 함께 예언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갈수록 좋아진다고 예언한 역술가도 상당수였다. 틀린 역술가는 이 정도도 못 맞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영업을 접는 것이 도리다. ‘아니면 말고’ 식의 뻔뻔함, 심지어는 1년 전에 예언했다면서 엉터리 허위 증거자료를 내놓는 후안무치에 법적으로 사기죄가 안 되는지 관계당국에서는 검토해 봐야 한다. 강호의 고수는 돈 받고 남의 운명을 봐주는 역술인에게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이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몇 달 학원 다니고 나서 점상 차리는 세태만큼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점을 친 대목이 17회나 나온다. 오늘날 윷점을 말하는데 나무막대를 던져 괘를 만들어 길흉을 확인하는 것이다. 장군은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를 위해 점을 치지 않았다. 어머니, 아들과 아내의 안부, 전쟁의 승패, 후원자 류성룡이 아플 때 쳤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충무공의 애틋한 심사가 가슴을 친다. 그분도 우리처럼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아플 때 병원 가듯이 힘들 때 점을 치는 일을 나무랄 수 없다.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일부 점술가들이 문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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