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김정은 특사 김여정이 들고 온 남북정상회담 카드는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북한은 우리 측에서 적극적으로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과 김여정의 회담을 약속했다가 회담 두 시간 전에 전격 취소했다. 비정상 국가 북한의 체제적 생래와 북핵에 대한 태도가 어떤 것인지 상징적으로 암시해 주는 대목이다. 남북정상회담 카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성과가 담보되지 않으면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정부에게는 장미속의 가시와 같다.
지난번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한 고위급회담 대표였던 리선권은 ‘북한의 핵무기는 철저히 미국을 겨냥한 것이며 미국과의 문제이지 한국과는 관계없는 사항이다’라고 천명했다. 이는 핵무력 완성의 시간을 벌고 한미공조를 위시한 국제제재의 틀을 흔들어 보려는 북한의 평화공세로 조성된 남북평화무드가 우리의 순간적인 착시현상일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단 파견시 북한의 비핵화 입장을 받아내지 않고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한·미 통상 마찰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견지하는 일련의 태도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의 대응도 마음에 걸린다.
우리 정부는 안보와 통상은 별개라는 소위 투트랙 전략을 사용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대북유화책에 대한 미국의 우려에 통상 마찰에 따른 앙금이 더해지면서 한미 안보공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칫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면 그 후폭풍은 엄청날 수가 있다. 우리 정부는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한미 정상통화 등에서 미일의 트럼프 아베의 밀월관계와는 대조적으로 양국 간의 안보소통이 원활한 모습은 아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전제로 북미대화를 들고 있는데 북한이 통남봉미(通南封美) 카드를 꺼내들고 있고 미국은 오히려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에 방점을 두고 있다. 북한은 체제 수호신인 핵과 미사일로 미국과 평화협상을 하고 남북한 재래식 무력불균형을 해결하며 남조선혁명의 완수수단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그 핵무기로 인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동참한 국제제재에 직면하여 체제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지금 우리 정부가 경계해야 되는 것은 감상적인 민족주의다. 북한의 핵무기는 모두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순진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가 남북화해 무드에서 핵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틈새를 파고들어 북한은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며 통남봉미·카드를 꺼내들어 한미동맹의 균열을 노리고 있다. 이처럼 핵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없는 한 남북 화해무드는 조만간 세차게 몰아칠 북핵 위기의 태풍의 눈 속에 고요와 같은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유영옥 국민대 교수·국가보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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