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로는 순종 8년(1808)에 과거에 합격했으나 포기하고 학문과 제자 양성에만 전념했다. 고종 3년(1866)에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에게 전쟁으로 맞설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는 주리철학을 재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조선 말기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했다.
건물은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채와 대문간에 붙어있는 집으로 주로 하인들이 머물던 행랑채가 있다. 또한 집의 안쪽에 있으며 ‘ㄱ’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안채가 있어서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공간구성을 따르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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