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자신을 보는 눈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다.
둘째는 남을 보는 눈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알고, 자기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그들과 조화를 이루어 나갈 때 건강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셋째는 세상을 보는 눈이다. 이 세상은 지금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나는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는 눈이다.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 전체가 성장하지 않는 한, 개인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 자기 자신과 남을 보는 지혜로운 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통찰하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런 눈이 생겼을 때,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기를 수 있다. 먼저 나를 보고, 그 다음 다른 사람을 보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때,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 세 가지 눈이 있는 사람의 두 발은 현실을 단단하게 딛고, 그의 머리와 가슴은 이상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제일 소중한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서슴없이 ‘생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한번 태어나서 한 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체다. 종교적으로는 영생이라는 불멸의 존재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분명 유한한 존재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신과 반목을 청산하고 화합과 상생의 길을 가는 길은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말한다.
세대 간 오해는 불가피한 일이고, 해소 또한 쉽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해를) 줄이자면, 기성세대가 먼저 스스로를 책망하고 반성해야 한다. 아울러 젊은 세대들은 죽을 때까지 젊은이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의 사상과 이상이 잘못되었다 싶으면 저항하고 타파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미움은 버려라.
그래, 우리 인생은 그리 완전한 것도 특별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를 볼 수 있고, 남을 볼 수 있고, 아울러 사회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이 세상은 좀 더 향기로운 사람 냄새로 그윽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왕이면, 그 눈은 봄 향기 그윽한 사랑의 눈이었으면 더 좋겠다.
조규일 법무사·前 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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